9page

편집의원 컬럼 • 순국선열 ‘희생 · 헌신, 독립정신’으로 내외 위기 극복 필요 9 독립운동 단체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큰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모두 71개 단체 의 대표 125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두 74차례 나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갑론을박을 거듭 했으나, 크게 보면 주요 논의는 대한민국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하 는 창조파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편, 보완해 야 한다는 개조파로 나뉘었다. 결국 양측의 주 장이 대립하면서 끝내 합의가 무산되고 회의는  결렬되고 말았다. 각 단체나 정파의 이해관계 를 초월하여 대통합 정신과 대단결을 실천하지  못한 결과가 무척 아쉽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건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 민족과 독립운동의 진로, 방법론을  둘러싸고 많은 토의를 거듭한 것은 중요한 의 미가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 시 한번 위기에 직면하여 대한민국의 진로와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문호를 활짝 열어제치 고,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여 중지를 모아 대통 합과 대단결의 기회를 마련할 때라고 본다. 만주 독립운동 ·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 이상룡의 단결과 통합 노력 사례 1910년대 남만주 서간도 지역에서 경학사 (耕學社)와 부민단(扶民團), 신흥강습소 등을 주 도하고, 1926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던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은 늘 양보 와 화합, 대동단결을 강조하며 몸소 실천하였 다. 그는 초대 부민단장을 지낸 동지 허혁(許爀,  허겸, 1851~1940)에게 1914년에 보낸 편지에 서 “당파(黨派)라는 두 글자에 이르러서는 오직  입에서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곧 모름지기 마 음에 두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오래  오래 지속이 되면 같은 목적으로 같은 걱정을  하는 처지인데 어찌 분열할 이치가 있겠습니 까?” 라고 하며 파벌과 분열을 배제하고 통합 과 단합을 적극 주장하였다.       국민대표회의 의장 김동삼 김동삼 인터뷰내용 보도 독립신문 기사(1923.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