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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88회) 86 2023년 2월 평북 삭주의 만세시위 산간오지 삭주군, 3 · 1운동만큼은 어느 곳 못지 않게 뜨거워 3월 31일 3천여 명의 많은 애국군중 참여 글  이정은(3 · 1운동가념사업회장) 삭주 구성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 구성은 산을 넘은 육천리요 물 맞아 함빡히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너머 먼 육천리 …  (하략) 삭주면 기차도 없었을 때인 1919년 3월 3일 정오, 삭주군 삭주면 삭주 천도교구의 안경조(安京朝), 김시율(金 時 律) 등 3명이 독립선언서 360매를 삭주교구로 가지 고 오다가 삭주헌병분견소에 발각되었다. 안경조 등 은 헌병대에 붙잡혀가고, 독립선언서는 압수당했다. “천도교인들이 몰려올 것이다.” 3월 8일 삭주헌병분견소는 천도교인들이 안경조 등을 구출하러 삭주 읍내로 몰려올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인접한 창성수비대에 응원병을 요청하여 5명이 와서 경계를 강화하였다. 이튿날인 3월 9일 오전 9시경 천도교인 등 약 50 명이 삭주 읍내에 모여들었다. 시위운동을 시작하려 는데 경계하고 있던 헌병들이 달려와 제지, 해산당 했다. 3월 15일,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이 일어났다. 삭주 면 서부동의 김명봉(金明鳳)은 3월 10일 삭주면 온풍 평안북도 삭주는 서쪽에 의주군, 동북쪽에 창성군에 끼어 압록강 중하류에 좁게 입을 대고 있다. 원래 산간 오지인 그곳 은  1937년 9월 수풍댐이 준공되면서 압록강 연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의 하나가 되었다. 2년 뒤인 1939년 9월에는 경의선의  정 주에서 수풍에 이르는 평북선(平北線) 철도가 개통되어 ‘오지’를 면하게 되었다. 김소월의 ‘삭주 구성’이라는 시가 이 산간 지 역의 심란한 풍광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