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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84 2023년 2월 러일전쟁을 불러오다 일본이 갑오개혁을 통하 여 한국의 내정을 요리하려 는 계략을 펴고 있는 동안에도 청 · 일 두 나라는 군대의 철수 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 다. 이에 따라 일본은 청 나라 와의 전쟁을 불가피한 현상으 로 몰고 갔다. 이 배후에는 한 국을 자기네 뜻대로 요리하겠 다는 제국주의적 야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에 대한 내정개혁을 추진하면 서 한편으로는 인천 앞바다 풍도(豊島)에 정박 중인 청 나라 함정을 침몰시킴으로써 조선은 청 · 일 두 나 라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것이 청 · 일 전쟁 의 시작이었다. 그 후, 전쟁은 성환, 평양으로 이어졌 으며, 일본이 압록강 전투에서 청 나라를 패퇴시키고 여순(旅順) · 봉천(奉天) · 산동반도(山東半島)로 진격하 면서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였다. 이 때가 1895년 4월이었다. 이로써,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략의 야욕 을 더욱 키워갔다. 그리고,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는 러시아가 압록강의 삼림벌채권을 행사하는 것 과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일본은 1904년(高宗 41년) 2월 8일 도오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해군사령관 이 지휘하는 함대가 여순항(旅順港)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 으로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9일 새벽에 일본군 이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몰려들었다. 이로써 , 한 국은 러일전쟁의 각축장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우리 조정은 큰 충격에 빠졌으며, 대신들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가 외부대신 서리 이 지용(李址鎔)의 주선으로 고종황제를 알현하고, 개전 의 사실을 설명하고 협력을 구하였다. 친러파 이용 익(李容翊)이 힘을 다하였지만, 일본의 세력을 막을 길이 없었다. 일본은 발빠르게 2월 23일, 공수동맹을 전제로 한 일의정서를 체결하고, 한국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한 · 일 양국 간의 오래도록 바뀌지 않은 친교를 유지 하며 동양의 평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신뢰하여 시정개선에 관한 충고를 받아 들여야 한다거나’, ‘제3국의 침략에 의하거나 내란으 로 인하여 한국 황실의 안녕보존이 위험에 처할 경 우에 일본은 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거나’, ‘이 목 적을 위하여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사용할 수 일본 황태자를 마중 나가는 순종 황제 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