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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심훈의 상록수 주인공 안산 샘골 “최용신” 73 만 사실 그는 소설가이기 전에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심훈은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만세 시위에 가담하여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조 선독립만세를 외치다 붙잡혀 6개월간 옥고를 겪었 으며 이후 항일민족정신을 바탕으로 한 시와 소설을 발표하여 민족의식을 드높였다. 최용신(1909.8.12- 1935.1.23) 지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심훈 선생을 꺼 낸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다. 그럴만한 사정 이란 농촌계몽소설인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모델 이 된 인물이 바로 애국지사 최용신 선생이기 때문 이다. 최용신 지사는 함경남도 덕원(德原) 출신으로 식민 지 수탈에 의해 피폐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 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그가 농촌 계몽운동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1928년 함남 원산의 루씨여고보(樓氏女高普)를 졸업하고 협성여 자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이때 그는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라 는 신념으로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다. 당시 조선은 일제국주의의 수탈이 가속화되고 있 었고 토지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만 주, 간도, 일본 등으로 유랑민이 되어 떠돌기 시작했 다. 1930년대, 최용신이 안산 샘골로 내려가 계몽운 동을 하기 시작할 무렵, 조선의 인구 2천여만 명 가 운데 도시 인구는 고작 5.6%이고 그대신 농촌인구는 94.4%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무렵 최용신처럼 배운 사람들은 문맹퇴치운동을 통한 민족의식 회복이라 는 원대한 꿈을 안고 이른바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을 펼치게 된다. 이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최용신 지사의 무덤가에 세 운 비석에 새긴 ‘겨레의 후손 들아’ 라는 글귀다. 안산 샘 골에서 청춘을 바쳐 계몽운 동에 힘쓰다 스물여섯 꽃다 운 나이로 숨진 최용신 지사 의 무덤을 찾은 날은 2013년 11월 중순으로 노란 은행잎 이 떨어져 뒹굴고 바람이 다 소 쌀쌀하게 불던 날이었다. 최용신 지사 무덤 앞에 새겨진 글 위대한 사람이 되는 네 가지 요소가 여기 있나니 첫째는 가난의 훈련이요, 둘째는 어진 어머니의 교육이요, 셋째는 청소년 시절에 받은 감동이요, 넷째는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