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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54 2023년 2월 했다. 이 말을 마치고 한참을 통곡한 채상덕 은 “내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 기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고 말았다. 고마령 참변에서 순국한 당시 참의장 겸 제2 중대장인 최석순은 일찍이 대한독립단 시절 부터 채상덕이 총애하던 인물이었고, 함께 순 국한 인물들 역시 채상덕이 평소에 아끼던 대 한독립단 계통의 부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수흥의 국내 진입 특공작전 스승인 채상덕이 운명하자 이수흥은 좋 은 터를 골라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남아있 는 스승의 가족을 약 1년간 보살피다가 1926 년 4월 중순 김운용에게 권총 두 자루와 탄약 176여 발을 받았다. 이후 같은 해 5월에 일대 특공작전을 위해 국내로 진입하였다. 스승 채상덕의 주선으로 대한민국임시정 부 직할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에 가입한 그는 제2중대 특무정사(特務正士) 에 임명되었다. 1926년 5월에 모젤권총 1정 과 실탄 147발, 브로닝 구식 권총 1정과 실 탄 29발을 휴대하고 조선총독 및 일제 고관 을 처단하기 위하여 국내로 진입했다. 그는 먼저 군자금이 필요했으므로, 7월 6일 황해 도 평산군 안성면 발참리에 사는 김상렬(金相 烈)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뜻을 이루 지 못했다. 다시 경기도 이천군 읍내면 중리 에 사는 유택수(柳澤秀)의 집으로 가던 도중 같은 달 10일 서울 동소문파출소를 습격하여 보초근무중인 일본인 순사 도쿠나가(德永勝 次)를 저격하여 중상을 입혔다. 이 날 서울을 지나다가 동소문파출소가 눈 에 띄자 대담하게도 혼자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날 밤 열한시 쯤 파출소 앞에서 보 초근무 중이던 일본인 순사 도쿠나가에게 분 노의 총격을 가하여 중상을 입혔던 것이다. 이 거사 이후 이수흥은 경계망을 뚫고 이천 으로 향하여 평소 알고 지내던 유택수와 동 생 유남수(柳南秀)를 만나 자신이 독립운동 단체인 참의부 특파대원으로 온 사실을 알리 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기꺼 이 동의하였다. 총독부 당국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포위망을 좁혀왔다. 같은해 9월 9일에는 경기도 안성에서 유택수와 함께 군자금 요청을 거절하는 부호 박승육(朴承六) 의 아들 박태병(朴泰秉)을 사살하고 말았다. 「부하들이 죽엇는데 나 혼자 살아갈 면목이 업다고 리수흥 을 불러안치고 최총재는 음독자살로 인책」   동아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