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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50 2023년 2월 에는 각 의병장 중심으로 단위부대를 편성한 뒤, 각지로 분산하여 활동했다. 때문에 일본군 은 좀처럼 의병부대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봉기 후 기삼연 의병부대는 전남 장성 지역 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북상하였다. 1907년 10월 29일 고창 문수사에서 휘하 선봉장 김 태원이 거느린 의병부대가 일본군을 격파하 고, 주민들로부터 군량 등 군수물자를 지원 받아 영광 법성포로 나아갔다. 이는 법성포에 서 조기어장과 세곡미의 운송로를 안정적으 로 확보하기 위해 일찍부터 일본인들이 들어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일본인들을 위한 경찰주재소와 우편취급소, 상점 등도 갖 추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삼연의 호남창 의회맹소는 이곳을 쳐서 군량미를 확보하고 일제 침략 세력을 응징하려고 하였다. 1907년 12월 7일 선생을 비롯하여 통령 김 용구, 선봉장 김태원 등이 지휘하는 호남창의 회맹소 의병부대는 영광 법성포를 공격하여 그곳을 탈환하였다. 그 뒤 순사주재소와 우편 소는 물론 일본인 가옥 7채를 불태워버렸다. 또 창고에 쌓여 있는 세곡미를 비롯한 곡식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일부는 군량미로 노 획하였다. 일제 침략세력에 대해 철퇴를 가한 것이다. 법성포 공격 직후 기삼연이 지휘하는 호남창의회맹소는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의 병부대를 나누어 활동하게 되었다. 즉 기삼연 이 영도하는 본대는 장성과 담양으로, 통령 김용구가 지휘하는 부대는 고창으로, 선봉장 김태원이 인솔하는 부대는 나주, 함평, 광주 로 이동하여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처럼 기삼연이 영도하는 호남창의회맹 소 의병부대가 장성, 고창, 영광 등지에서 기 세를 떨치게 되자, 일본군 광주수비대는 병 호남창의동맹비(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