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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23년 2월 Special Theme  「조선혁명선언」 100년! 새로운 사회 건설을 꿈꾸다 「조선혁명선언」의 주체는 민중이 었고, 그 수단은 폭력 – 암살 · 파 괴 · 폭동이었다. 그 과정은 ① 강 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 ② 불합리 한 일체 제도 개조, ③ 이상적 조 선의 건설이었다. “민중은 우리 혁 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 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 없는 폭력 - 암살 · 파괴 · 폭동으로 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 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 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 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 설할지니라.”  1920년, ‘독립전쟁의 해’ 선포 1920년 1월 5일 저녁, 도산(島山) 안창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신년  축하회 석상에서 ‘우리 국민이 단정(斷定)코 실행할 육대사(六大事)’를  천명하였다. 6대사란 군사 · 외교 · 교육 · 사법 · 재정 · 통일을 말한다. 도산 이 6대사 가운데 으뜸으로 군사를 꼽은 것은 특기할만하다. 안창호(이 하 도산)는 연설을 통해서 ‘신년은 전쟁의 해’라고 하며, 독립전쟁의 시 기가 무르익었다고 확언하였다. 『독립신문』은 이를 도산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방책의 비공식적 발표라고 평가하며, 이제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금 년 내에 ‘독립전쟁의 해’를 선언하는 것은 기정이고 확정일 사실이라고  단정하였다. 도산은 만주의 독립군 지도자인 석주 이상룡에게 보낸 서신에서 임 정의 4대 정책을 첫째 외교, 둘째 내정, 셋째 재정, 넷째 군사로 우선순 위로 설명하였다. 이에 대해 석주는 우선순위를 바꿔 군사를 첫째에 두 고 둘째를 재정으로 하도록 하고, 군사와 재정이 잘 풀리면 외교와 내정 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답신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했다고는 하나, 당장은  실천할 수 없는 다소 선언적 의미 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도 산은 만주지역의 ‘장사(壯士)’들에 게 정부의 무력함을 비웃지 말고,  군사의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 들을 조사 통일하여 ‘대한인(大韓 人)’끼리 통일적 행동을 할 것을 촉 구하였던 것이다. 그는 훈련을 강 조하고 국민개병주의를 천명하였 다. 나아가 국민개병주의에 반대하 는 것은 독립전쟁을 반대하는 것이고, 독립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독립 을 반대하는 것이란 논리를 설파하여 일동의 동의를 구하였다. ➊  안창호(1878~1938) ➋  이상룡(1858~1932) ➊ 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