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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23년 2월 Special Theme  「조선혁명선언」 100년! 새로운 사회 건설을 꿈꾸다 가 만나면서 민중 직접 혁명 개념에 도달하게 된 것 이다. 민중혁명의 가능성 모색 민중 자신이 약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 는 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이것이 행동으 로 표현된 것이 ‘폭력 – 암살, 파괴, 폭동’이었다. 「조 선혁명선언」에서는 ‘혁명’이 주로 강도 일본을 구축 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며, 종래 독립운동 방법론으로  거론되었던 외교론, 준비론, 실력양성론 등과 대비되 는 방법으로 기술되었다. 무정부주의에서는 정치, 경 제, 사회적으로 권력을 갖지 못한 무산 민중이 권력  일체를 타파하는 폭력 투쟁이 정당화된다. 신채호 역 시 1910년대 국망 이후에는 나라가 없는 약자가 강 자나 권력자의 지도나 도움이 없이 일제의 식민 통치 에서 해방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다. 3 · 1운동 이후 국제평화회의에 대한 실망, 대한 민 국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한 불만, 무장독립운동단체 의 통일 작업의 부진 등은 신채호로 하여금 종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그는 의열단의 자기희생적 ‘의열 투쟁’에서 약 자가 약자 자신을 무기로 강자를 물리칠 수 있는 가 능성을 발견하였다. 또한 3 · 1운동을 통해 그동안 약 자로만 인식했던 민중의 폭발적 힘을 발견하였다.  3 · 1운동은 민중의 힘을 보여주었지만, 구체적인 결 실을 맺지 못하였다. 그 원인을 신채호는 ‘폭력적 중 심이 없었다’는 데서 찾았다. 외교론과 준비론이 3 · 1 운동의 민중성을 오도했다고 비판하였다. 「조선혁명선언」에서 현실적인 존재로서의 민중은  정치 권력과 경제적 부에서 소외된 무산 민중으로 약 ‘조선혁명선언’의 참정론 · 자치론 비판(왼쪽) 및 외교론 비판(오른쪽) 서술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