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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월31일 수요일 6 (제205호) 특집 2024년 새해에는 총선(總選)을 비롯 국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선택의부름을기다리며꿈을키워나가는사람들이많다.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치러지는 전쟁은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인류최악의상황이벌어지고있다.이때에주목받는고전명구가 있다. 사람은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인 간의 본능이다.그러나그 도(道)가 지나치면 욕심으로비추어지 고더나아가사욕으로볼수있어종국에는인간으로서패망하는 것을 주변을 통해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영원한만족을얻지못하고,스스로만족하지못하면만족을얻지 못한다.그리고한표주박의물로도즐거움은남아돌고,진수성찬 으로도근심은끝이없다.라는진리를무색케만든다. 븮君自之足長自足(군자지족장자족) 군자(君子)는 항시(恒時) 만 족(滿足)해하는데小人之足長不足(소인지족장부족)소인(小人)은 언제나부족해한다.不足之足何以足(부족지족하이족)부족한것 을어찌채우나?足又足矣常不足(족우족의상부족)한(限)없이족 (足)해도부족해하네.븯 이는 조선 성종 때 강원감사를 역임한 충주인 파은 박수기(波 隱 朴秀基 1429~1510)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처조부인 사인 김 영호(舍人 金永浩)가 살던 장수로 내려와 1479년(성종 10) 경에 노천평기암위에자락정을짓고유유자적하며지은자족시의일 부분이다.지금우리가가장지향하여야할고전명구로새해족부 족시를통해평정심을찾고사회가순화되고따듯한한해가되길 기대해보며소개해본다. 자락정은전북장수군의현존하는정자중가장오래되고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정자로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942 노평 마을입구하천변에세워져있다. 노평천 기암위에 세워진 자락정은 강원감사를 역임하였던 박 수기(朴秀基,1429~1510)선생이 관복(官服)을 벗고 처조부인 김 영호(金永浩)가 살던 장수로 내려와 조선 성종 10년(1479) 경에 지은것으로전해진다.그러나세월이흐르는동안정자는무너지 고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고종20년(1883) 양가(兩家) 후손들이 힘을합하여유허비(遺墟碑)를세우고,또성력(誠力)을모아192 4년정면2칸측면2칸으로복원하였다. 선생의 족부족시는 한국고금한시선집(韓國古今漢詩選集, 편 저자조남권)조선시대편에실려전해진다.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명리(名利)에 발을 끊어버리고 강호 (江湖)에 물러나 자호(自號)를 파은(波隱)이라 하고 드디어 물 이 맑고 푸른 경치 좋은 곳에 복숭아를 심고 복사꽃 물위에 정자 를 세우고 자락(自樂)이라 이름 하니 평생의 뜻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자(自)라 함은 외물(外物)에 찾지 않음이고,락(樂)은 가난 속 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기는 뜻이다.대체로 사람마 다즐거워함이있는데그방향(方向)이각기다르기때문에높은 집과호화로운음식은부귀(富貴)의즐거움에불과하고,고급승 용차에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세를 과시하는 것은 사치의 즐거움 에불과한것이다. 낙천지명(樂天知命)은 공자의 가르침이고 군자삼락(君子三 樂,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며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영재(英才)를 얻어 가르 치는것을말한다.)은맹자의가르침이니선생이 정자(亭子)에붙 인뜻은성현의즐거워함에취(取)한것이니사치스러운집과음 식이 선생의 낙(樂)이 될 수 없으며,미인(美人)이 비파(琵琶)를 뜯는 것이 선생에게는 기쁨이 될 수 없고 오직 단표누항(簞瓢陋 巷,소박한 시골생활)에 호학(好學)에 뜻을 둠이 선생이 즐거워 함이며 가난한 집에 갈의(葛衣)입고 낙도망우(樂道忘憂)함이 선생에게는 참으로 즐거워함이기에 븮강호(江湖)에 물러나 20년 에 세상 소식을 전하는이 없다.븯는 시를 읊고 또 븮군자는 항시 만 족해하고소인은언제나부족해한다.븯고족부족시를읊었던것 이다. 족부족시(足不足詩)를 말하면 흔히 구봉 송익필(龜峯 宋翼 弼:1534~1599)의 시(詩)를 연상하며 대표적 족부족시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구봉 공의 족부족시는 파은 선생보다 100 여년후에나온것으로많은차이점을보이고있다. 이에 대해 자락정유고(自樂亭遺稿) 서문에서 유기영(柳基 榮)선생은다음과같이적고있어인용하여소개한다. 족부족시(足不足詩)라 하는 것은 칠언고시(七言古詩, 한 구 가 일곱 글자씩으로 된, 형식이 자유로운 고체의 한시)로 일정 수의 족(足)자를 연용압운(連用押韻)한 매우 독특한 형식이다. 구봉은 20足字를 연용 압운하였고, 파은 선생은 28장(章)을 연 속기술(記述)하였는바체제나구성시상전개가매우흡사한양 상(樣相)을보이고있다. 구봉 선생과 파은 선생 두 분의 생몰연대 및 족부족시 그리고 여타의 시를 통하여 비교 검토해 보면 구봉이 파은 선생보다 105 년이연하인점,구봉의시속에서유리중(流離中)남원지명이자 주나타나는 점 체제 및구성이 비슷한 점 등으로 보아 구봉이 남 원근처에내려올때백화산아래의벽계(碧溪)를지나게되었을 것이고,자락정의내력과족부족시도접하게되었을것이다. 두 어른의 생(生)의 처지가 달랐을 것이지만 구봉이 자락정을 대하는감회는특별한것이되었을것이며그래서비슷한형태의 족부족시를쓰게되었을것이라는추측이다.』 선생은족부족시28장을짓고말미에『我足旣足何不足(아형기 족하부족)나의 족함이 이미 족한데 무엇이 부족하랴/足且足兮 江波之亭兮(족차족혜강파지정혜) 족(足)하고 족(足)함이여 강 파(江波)의 정자로다/ 我獨樂兮(아독락혜) 나 홀로 즐거워함이 여/ 乾坤謂我分爾足(건곤위아분이족) 건곤(乾坤)이 날더러 분 수에 족하다 하니/ 何求於人何得於外哉(하구어인하득어외재) 무엇을 남에게 찾으며 무엇을 밖에서 기다리랴』 라고 마무리 한 다. 선생은가고정자(亭子)는유구한세월동안그자리를지키고 있어선생의즐거움이산(山)으로더불어무너지지않고물로더 불어 끓이지 않으니 정자(亭子) 터를 중국(中國) 절강성(浙江 省)소흥현(紹興縣)남서(南西)에위치(位置)하는난저(蘭渚)에 있던정(亭)난정(蘭亭)죽루(竹樓)의유허(遺墟)에비하여부끄 러울 게 없다. 이에 파은 선생의 13대손 원파 박수섭(遠波 朴洙燮, 장수향교 원임전교)선생은장차계묘년을보내면서자락정을찾아시(詩) 를짓고선조의유훈을되새기며음덕에감사하며새해를맞이하 고 있어 소개해 본다. 등자락정(登自樂亭) 자락정에 올라/ 추월 천공조(秋月天空照)갈달이빈하늘을훤히비추고/은파만리전 (銀波萬里全) 흰 물결은 멀리 흐르네/ 청풍망부족(淸風忘不足) 청풍에 ‘不足’도 잊고/ 독락고운연(獨樂古雲煙) 홀로 옛 운치를 즐기노라. 선생의 본관은 충주이고,관조 부정공(副正公)휘 영(英)의 10 대손이다. 증조의 휘는 광리(光理)이니 중산대부 민부의랑이고, 할아버지의 휘는 진( 풂 )으로 사헌부 감찰, 진해, 직산 감무를 지 내고병조참의에증직되었다.아버지의이름은충함으로주부(注 簿),사복사(司僕寺)정(正)으로 가의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 고,어머니 정부인 김씨는 장령 효공(孝恭)의 따님이다.선생은 5 남3녀중셋째아들이다. 1429년9월13일에호서덕진현가장동(현대전시서구가장동) 에서 태어나 성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가의대부 강원감사를 지 내다가 연산 혼조(昏朝)를 만나 장수현에 은거하여 말년의 계획 으로 자락정을 짓고 날마다 촌수재(村秀才)와 더불어 의리를 깊 이연구하고영리(榮利)를멀리하여서(序),율(律)과족부족시2 8절을 지으니 선생의 재종질 사암 문충공(思庵 文忠公,휘 순)의 기문에이르기를븮學文의알참과명절(名節)의높음과그리고문 장(文章) 덕업(德業)이 해와 별처럼 밝다븯하였으니 선생의 수양 (修養)을 짐작할 만 하다. 1510년 12월 18일에 하세하니 향수(享 壽)82세이다.장수화산사에배향되었다. /글븡사진=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뱚새해특집 선현(先賢)의고전명구(古典名句) 君自之足長自足(군자지족장자족)군자(君子)는항시(恒時)만족해 하는데 小人之足長不足(소인지족장부족)소인(小人)은언제나부족해한다 . 자락정(自樂亭)과족부족시(足不足詩) 자락정원운 파은박수기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