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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산하 교통사무 국은 국내는 물론 만주·러시아 등지와 통신 연락을 위한 상설기구이다. 1919년 5월 제4 회 의정원회의에서 국무원은 교통부 산하 국 내외 연락망 조직을 창설하는 안을 의결하였 다. 임시정부에서는 안동지부를 설치한 지 3 개월 후인 1919년 8월 20일 국무원령으로 < 임시 지방교통사무국 장정(章程)>을 공포했 는데, 그 제1조에 ‘우전(郵傳)사무를 위해 중 요 지점에 임시교통사무국을 설치하되 위치 는 교통총장이 정하고 관할지역은 현행 연통제에 준한다’고 규정했으며, 제2조에서는 임시지방교통 사무국 직원으로 통신원 2인을 두되 통신원은 상부 명령에 의해 통신 내왕에 종사하도록 규정했다. 1919년 5월 교통부 안동지부사무국을 설치한 이래 교통국이라는 명칭을 가진 곳이 5개소, 통신국 1개 소 , 교통부 1개소가 기록되어 있다. 교통국 조직망이 짜여진 지역은 평안도·함경남도·황해도·경인 지방·만주 등이었고, 가장 활발했던 곳은 안동교통사무국으로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여 기밀문서 및 위험물 수송을 담당했다. 임시정부 교통국은 서신 또는 전 신용으로 한글·일문·아라비아숫 자 또는 영자로 된 암호를 정하여 특수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임시정 부의 주요연락을 담당했던 교통국 관계인들의 수난은 1919년 11월 27 일 지부장 김동환을 비롯한 평안북 도 관서지부원들이 일본 경찰에 체 포된 것을 시작으로 1920년 1월 24 일에는 안동교통국 사무국장 홍성 익의 피검과 함께 주요 조직이 노출되었다. 수많은 교통국 관계인이 수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교 통국은 1919년에서 1922년 초까지 임시정부 통신기관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안동교통국을 이끌었던 사무국장은 제 1대 선우 혁, 2대 홍성익, 3대 양준명 4대 장덕로가 활동하였다. 단동시 흥륭가, 이륭양행이 있던 곳으로 안동교통국, 대한독립청년단이 활동 하던 역사의 현장이다 안동교통국과 대한독립단원들이 활동하던 단동시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