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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85 재조명하고 나라사랑 전통정신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조성됐다. 적원일기, 영야음 등의 청송의병 유 물과 불원복태극기, 속오작대도 등의 전국의병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제천 의병전투지와 유인석 제천 남산은 제천의병의 항일 정신이 깃든 격전 지이다. 1895년(고종 32년) 단발령 이후 제천의병 은 유인석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고, 1896년(고종 33년) 2월 17일에 충주성을 함락시키는 등 기세를 떨쳤으나, 가흥과 수안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 대와 관군의 공세로 3월 5일 충주성을 빼앗기고 다 시 제천으로 후퇴하였다. 의병은 남산에 주둔하면 서 중앙공원 아후산에 지휘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에 의병의 방어 선은 점차 밀렸고, 5월 25일에는 근거지인 남산에서 최후의 방어전을 벌였다. 이 남산 전투에서 중 군장 안승우와 종사관 홍사구를 비롯하여 많은 의병들이 순국하였다. 한말의 위정척사론자이며 의병장인 의암(毅菴) 유인석(1842∼1915) 선생 은 조선 헌종 8년(1842년) 춘천시 남면에서 태어났다. 고종 32년(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운동을 시작하여 크게 활약하였으나, 관 군의 공격으로 모두 흩어지게 되었다. 이후 1908년 해외로 망명한 후 1910 년 6월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十三道義軍)을 결성하였고 여기에서 도총재로 추대되었다. 그는 현실적인 위정척사론으로 의병항쟁 을 전개시킨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선생의 숭 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고향인 춘천시 남면에 그 묘역을 보존하고 기 념관을 지어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홍주의병전투지 1906년 5월 19일 홍주성을 점령한 홍주의병은 천제를 지내고 의병의 편제를 보강하였다. 아울러 대장 민종식(閔宗植)은 인근의 각 군수에게 훈령을 내려 양식과 군기의 징발과 모병을 지시하였으 며, 이에 호응하여 인근의 사민들도 의병에 합류하였다. 홍주성 점령 소식을 접한 조선통감 이토히로부미는 하세가와요시미치에게 명령을 내려 일본군 제 제천 남산 의병전투지 유인석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