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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77 원장·정의부 참모장 등으로 활약하며 독립항쟁에 헌신한 일송 김동삼 선생, 한족회 대표로 상해 독립단체 대표자회 의(1923년)에 참석한 김형식, 협동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다 파리장서의거에 참 여하여 체포된 김병식 선생, 대한교육 협회 이사 김후병 등이 대표적인 독립항 쟁가들이다. 내앞마을 사람들은 을미항 쟁을 시작으로 의병 항쟁에 선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7년에는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를 세워 계몽교육을 이끌었다. 경술국치 후에는 문중 단위로 남만주에 집단 망명하여 독립 항쟁기지 건설에 앞장섰다. 독립항쟁의 성지답게 마을 곳곳에는 독립항쟁의 역사와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평생 독립항쟁에 헌신한 김동삼의 생가 내앞마을 안에는 이곳을 대표하는 독립항쟁가 중 한명 인 일송 김동삼 선생의 생가가 있다. 김동삼의 생가는 원 래 6칸 겹집 구조로 서편 앞뒤로 사랑과 사랑윗방, 중간 에 대청마루, 동편의 앞뒤로 주방과 안방이 위치하였으 나 지금은 동쪽 편에 1칸 추가되고 내부도 많이 개축되어 원래의 모습과 다소 차이가 난다. 그나마 동편 1칸을 제 외하면 건물의 외형은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일송 선생은 안동 의병의 최고 지도자였던 서산 김흥락 선생의 제자로서 항일 투쟁의 중심에 나섰다. 1907년에는 류인식과 김후병, 하중환과 함께 신식학교 인 협동학교를 세우고 교감이 되어 신교육 전파에 나섰다. 비밀결사인 신민회와 대동청년단에 참여 하며 계몽운동을 이끌었다가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서는 이상룡을 도와 독립항쟁기지 건설 에 힘썼다. 또한 인력 양성 기관인 신흥학교 설립과 서간도 이주 교민 자치 기관인 경학사 결성에 참 가하였으며 1914년 군사병영인 백서농장을 건립하여 장주가 되었고 1919년 서로군정서 참모장이 되 었다. 청산리 전투 후 1922년 통의부, 1924년 정의부를 결성하고 독립항쟁세력의 통합(참의부, 정의 부, 신민부)을 위해 노력하다가 체포되어 1937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안동의 명문 가문인 의성김씨 집성촌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내앞마을은 독립항쟁유공 자를 44명이나 배출한 독립항쟁의 산실이다. 만주에서 독립항쟁을 활발히 펼친 독립항쟁가 김동삼 선생 의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