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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이봉창 의거에 고무된 한인 애국단은 또 한 번의 거사를 계획하였다. 상하이 침략 전 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상하 이 훙커우 공원에서 전승 축 하식을 거행하기로 하자 이 를 기회로 일제 주요 인물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아침, 상 하이 훙커우 공원은 상하이 사변 전승 기념식과 일왕의 생일 축하 행사로 떠들썩하였다. 일본군은 시가행진을 벌였고 일본인들은 일장기를 흔들어댔다. 공원 안에 마련 된 단상 위에는 일본군 지휘관과 일본인 관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인 애국단 단원인 윤봉길은 김구의 지시를 받고 도시락과 물병에 폭탄을 숨긴 채 일본인으로 가장하여 식장으로 들어갔다. 11시 40분 일 본 국가가 울려퍼지자 윤봉길은 즉시 폭탄이 든 물통을 단상을 향해 던 졌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식장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로 인 해 일본군사령관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 지 등 일본군 장성과 고관 7명을 처단했고 수많은 일제 주요 인물들에 게 중상을 입혔다. 윤봉길은 그 자리에서 폭탄을 던져 자결하려 하였으 나 현장에서 잡혔고 그 해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사형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높은 뜻과 기개는 독립을 위해 투쟁에 나선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중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주 었다. 이 일 이후 중국 정부는 중국 영토 안에서 우리 민 족의 무장 독립 투쟁을 승인하며 임시정부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이 밖에도 한인 애국단은 이덕주·유진만 의 조선 총독 암살 미수 사건, 최흥식·유상근의 국제연 맹 조사단원 암살 미수 사건 등 일제의 주요 인물을 표 적으로 하는 항일 민족 운동을 계속해서 추진하였다. 김구 주석(왼쪽)과 윤봉길 의사(오른쪽) 동아일보에 실린 윤봉길 의사의 의거 관련 기사 효창공원에 마련된 삼의사묘(三義士墓). 광복이후 김구 선생은 이 곳에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명 의사의 유해를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