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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55 1947년 해방 후 신흥전문학원 (경희대학 전신) 설립을 자축하기 위해 모인 신흥학우단 1919년 무장 독립항쟁단체인 서로군정서가 만주 에서 조직되었다. 원래 정부 형태인 한족회의 산 하 군사조직인 군정부가 있었으나, 대한민국 임 시정부의 제의에 따라 서로군정서(독판 이상룡)로 개편한 것이다. 서로군정서는 독립군 양성, 일제 통치 기관 파괴, 민족 반역자와 친일파 처단을 주 요 활동으로 하였다. 서로군정서는 신흥학교 출신 젊은이들을 체계 적인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일송 김동삼이 이끈 백서농장 독립군, 신흥무관학교 출신들로 조직된 정규군대인 의용대와 교성대(신흥무관학교 생도)로 편성하였다. 서로군정서 독판 이상룡은 1920년 초에 연성사관학교를 설립한 북로군정서 김좌진 장군이 사관생을 양성할 교관을 파견해줄 것을 서 한으로 요청하자 이장녕 외 150명의 교관을 파견하였으며, 같은 해 7월 안도현 내두산 지역에 지청 천 장군으로 하여금 1개 대대(교성대) 병력으로 주둔하게 하였다. 이어 참모장 일송 김동삼이 직접 북로군정서(왕청현 서대파)를 방문하여 1개월간 유숙하면서 일본군 침공에 대비하여 작전계획을 도 모하고 안도현 내두산촌으로 집결하기로 하였다. 서로군정서는 홍범도 부대와 함께 청산리 전투(10 월 25일~26일)에 참가하였다. 이외에도 북간도 지역에는 독립항쟁단체인 간민회(1911년)와 중광단(1911년)이 조직되었고 용정촌, 명동촌에는 서전서숙(1906년), 명동학교(1908년) 등의 민족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1919년까지 간 도 일대에 세워진 학교는 100개가 넘었다. 연해주 지역에도 독립군 기지 건설이 활발히 이루어져 독립항쟁단체인 권업회(1911년)와 권업회가 수립한 대한광복군 정부(1914년), 러시아 한인 동포들을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성격의 단체인 대한 국민의회(1919년)가 수립되었다. 또한 신한인촌의 한인 학교 등 10여 개의 민족학교가 생겼다. 청산 리전투 이후 흩어진 만주지역 독립단체는 대한통군부, 통의부를 거쳐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모두 3 부로 재편 통합되었다. ■ 독립군이 거둔 빛나는 승리 |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1920년대 들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하는 독립군 부대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신흥무관학 교 출신의 독립군들도 가세하여 독립군 부대의 기세는 극에 달하였다. 박장호, 조맹선 등이 대한독 립단을 결성하였고, 이상룡, 김동삼, 김창환, 지청천 등이 주축이 되어 신흥무관(정규사관)학교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