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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51 의열단은 1919년 21세의 젊은 청년 김원봉 등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한 비 밀 항일운동단체다. 의열단이란 이름은 내부적으로 만든 규칙의 제1조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 히 실현한다.’에서 ‘정의’와 ‘맹렬’을 따서 만들었다. 단장은 김원봉이 맡았고 일정한 곳에 본부를 두 지 않았다. 13명의 단원으로 시작하여 1924년에는 70여 명에 달하였다. 의열단의 정신은 의열단의 선언문인 조선혁명선언을 통해 잘 드러난 다. 조선혁명선언은 신채호가 기초하였는데 일제침략의 실상을 폭로하 면서 잔악한 일제를 한반도로부터 영원히 몰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 력으로 맞서야 하며 외교를 가지고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고 하였다. 의열단은 의혈단이라고 불리며 주로 조선 총독부와 경찰서, 동양 척식 주식회사 등 일제의 주요 시설을 무너뜨리고 조선 총독부 고위 관리와 친 일파 우두머리를 처단하 였다. 이는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켜 민중 봉기를 유발하고 민중의 직접 혁명을 통해 일제를 타도하기 위함이었다. 1920년대 후반 들어 개별적인 무장투쟁에 한계를 느낀 의열단은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준비하였고, 중 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32년 난징에 군사 간부양성학교인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세웠다. 이어 중국 지역 민족 유일당 결성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혁 명당 결성을 주도하였다. 조선 혁명 선언의 주요 내용 " (중략) 강도 일본을 쫓아내려면 오직 혁명으로만 할 수 있으며,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 10만이 폭탄을 한 번 던진 것만 못하며, 천억 장의 신문, 잡지가 한 번의 폭동만 못할지니라. …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 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ㆍ암살ㆍ파괴ㆍ폭동 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지 못하 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1923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선혁명선언 기사내용 의열단 초기 단원들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