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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39 일제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식민 통치에도 민중의 반대와 저항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죽음 으로써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등 창씨개명 거부운동을 벌였으며, 교역자와 신도들이 서로 연대하여 신사참배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압적인 학도병·징병·징용에 대하여서도 반대 및 거부 하는 저항운동을 벌였다. 일본어 사용 강요에 대하여 한글 학자들이 저항운동을 벌이자, 일제 는 이들을 체포하여 투옥시켰으니 이 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다. 이로 인 해 회원 29명이 체포되었으며 일부는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조선어학회는 1920년대 조선어 연구회를 계승하여 1931년 설립된 국어연구기관으로 최 현배, 이윤재 등이 활동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제정하였으며 ‘우리말 큰 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조선어학회사 건으로 1942년 해체되었다. ■ 국내 항일항쟁의 의의 애국계몽운동은 제국주의 침략과 국내 지배 세력의 횡포로부터 국가와 민중을 보호하고 민중의식 을 깨우치기 위한 조직적 운동이었다. 교육과 산업 진흥을 통하여 민족의 실력을 양성함으로써 일제 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하여 민중 계몽부터 근대 교육, 산업 개발, 국학 및 국사 연구, 언론 활동, 독립군 기지 건설 등 다방면의 활동을 통하여 민족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애국계몽운동은 우리 민족 독립항쟁사에 있어 여러 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외세 침략에 대항 하여 자주 독립을 성취하는 계기로 작용하였으며, 지식인층 및 지배 계층이 아닌 민중의 힘과 실 력 양성을 통한 국권회복운동(민족자강운동)이었다. 또한 봉건제도 요소를 없애고 근대 국가 건설 을 구상하였으며, 신민회의 활동을 통해 잘 드러났듯이 국내에서는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국외에서는 독립군 기지 건설을 통한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하였다. 문화·경제적 실력을 키우면 서 일제와의 향후 투쟁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애국계몽운동가들은 교육 및 산업 육성을 통 조선어학회 일본어 사용 강요에 대항하여 한글학자들은 문화적 저항운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