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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을 전개하였으며 타협 민족주의자들은 추후 친일파로 돌아섰다. 때로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독립을 위하여 협력하기도 하고 함께 민족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그 결과 동맹 휴학 투쟁, 6.10 만세 운동, 광주 학생 항일 운동과 같은 청년·학생 운동, 농 민·노동 운동 등이 활발히 일어났다.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 | 물산장려운동 우리 민족의 경제활동을 제 한하기 위하여 일제가 1910년 공포한 회사령이 1920년 철폐 되었다. 회사령은 우리나라에 서 회사를 설립할 때 조선총독 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조 령(條令)이다. 회사령이 철폐 되면서 민족 기업이 대거 생겨났다. 경성 방직 주식회사와 같은 대지주 기업부터 메리야스 공장, 고 무신 공장 등 서민 기업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다량 생산하였다. 하지만 자본 과 생산력에서 우위를 점한 일본 기업에 밀려 민족 자본 축적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1920년 7월 조만식, 김동원 등의 민족 지도자들이 모여 조선물산장려회를 만들었다. 민족의 산업 을 발전시키고 민족의 자본을 육성하여 민족 경제의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조선 물산 장려회는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물산 장려가를 만들어 물산 장려 운동을 전개하였 다. 자급자족하고 국산품을 애용하며 일본 상품을 쓰지 말고 소비를 절약하자는 경제적 민족 운동이 었다. 아울러 근검저축·생활 개선·금주·단연 운동도 전개하였다. 물산 장려 운동을 홍 보하는 시가 행진 (1923) 장면(왼쪽)과 조선 물산 장려회의 전단 물산장려운동 경성 방직 주식회사의 국산품 애용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