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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95 ▒ 독립장 │최재형(崔在亨) 선생은 용의과감(勇毅果敢)의 인(人)이며 기(己)를 희생하야 동족을 구제하랴는 애국적 의협적 열혈이 충일하 는 인격자요 겸하야 성(誠)으로써 인(人)과 사(事)를 접(接)하야 민중의 신뢰와 존경을 박(博)하던 이라. - 독립신문에 실린 선생에 대한 추모 기사 러시아로의 이주와 인연으로 거둔 자수성가의 기회 선생은 1860년 8월 15일 함경북도 경원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부친 최흥백은 가난한 소작인이었고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흉년이 심하게 들었던 1869년 가을, 부친 최흥백은 선생을 데리 고 러시아로 들어가 지신허라는 한인마을에 정착했다. 지신허 마을로 이주한 2년 후인 1871년, 11살의 어린 선생은 가출을 감행한다. 같이 가출했던 2명 의 친구는 두려움으로 도중에 돌아가 버리고 혼자 남은 선생은 굶주림과 피로로 탈진해 쓰러진다. 선생을 구조한 사람은 러시아 상선 선원들이었다. 상선의 선장과 부인은 선생을 정성껏 보살펴 주 었고, 선원으로서 심부름하며 일할 수 있게 허락했다. 선장 부부는 대부와 대모가 되어 선생이 러시 아정교회식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러시아 사료에서 선생은 표트르 세묘노비치 최라 는 이름으로만 기록된다. 가출은 어린 선생에게 엄청난 행운이 됐다. 선장의 부인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르쳐 줬고 몸소 쌓은 부 아낌없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업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경제적 성공을 이룬 뒤, 이를 바탕으로 의병부대에 군자금을 제공, 「대동공보」 발행,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되 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 1860년 8월 15일 함경북도 경원 출생 ● 1908년 동의회 조직 의병운동 지원 ● 1909년 안중근과 단지동맹 결성 ● 1911년 권업회 창설 독립항쟁전개 ●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재무총장 선임 ● 1920년 4월 5일 일본 헌병대에 의해 피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