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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대한민국장 │조병세(趙秉世) 바라건대 우리 전국 동포는 내가 죽었다고 하여 슬퍼하지 말고 각자 분발하며 더욱 충의를 면려하여 나라를 도 와서 우리 독립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회계(會稽)의 수치를 씻는다면 병세는 지하에서도 춤추며 기뻐하겠소 , 각 기들 힘쓰시오. - 조병세 선생 유언 중 세계정세가 급변할 때 태어난 조선의 선비 조병세 선생은 1827년 6월 2일 서울 회동에서 태어났다. 조선 경종 때 노론 4대신 중 한 사람이었 던 조태채가 선생의 6대조이고 큰아버지 조두순은 고종 때 영의정을 역임한 명문 집안이었다. 이런 집안이었으니 조병세 선생도 자연스럽게 관직에 진출하는 분위기에서 자랐을 것이다. 철종 때 관직에 나가 대쪽같은 선비들이 거치는 삼사(三司)를 거쳐 고종 때는 왕의 최측근에서 중앙행정 부서의 관리자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펴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정세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정책으로 힘없는 나라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도 같은 상태였다. 조선은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막고 있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함은 자명한 바였다. 일제는 운양호 사건을 일으켜 국제법에 대해 아직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 자기 개항하게 됐다. 개국 당시 병조참지로 있던 조병세 선생은 ‘물질세계를 열어 힘써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화’ 라 인식하였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은 기자조선 당시에 개화했다고 보았고 외국과 조선의 차이 을사늑약 무효 주장하며 마지막까지 절개 지킨 올 곧은 선비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설파와 일제의 을사늑약 강제체결에 항거 하여 자결 순국함으로써 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하게 하다. ● 1827년 6월 2일 서울 회동 출생 ● 1896년 19개 조 시정개혁안 상소 ● 1905년 을사늑약무효와 5적 처단 요구 상소 ● 1905년 12월 1일 자결,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