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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65 ▒ 독립장│윤세주(尹世冑 ) 일본군은 3만여 명의 병력으로 태항산을 완전히 포위해 전차와 폭격기를 동원해 폭격을 가했다. 윤세주 열사 는 조선의용대에게 탈출로를 확보하고 비무장대원이 탈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수많은 대원이 희 생 된 가운데 5시간 만에 탈출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매우 영특한 성격에 의협심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 윤세주 열사는 1901년 6월 24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 치에 대해서는 평생을 저주할 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열사가 고작 10살밖에 안 됐던 1910년 경술국 치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일왕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렸다 고 했으니 일제에 대한 증오와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열사는 밀양의 사립 동화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 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되어 학교 내에 비밀결사인 연무단을 조직했다. 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으나 열사의 애국심은 식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사 람들을 모았다. 13일 오후 1시쯤 수천 명이 모인 장터에서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동료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은 만세 운동을 주도한 열사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열사는 만주로 망명했 어릴 때부터 애국심이 강했던 조선의용대의 지휘자 조선의열단 창설에 참가하고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항일 무장 투쟁에 앞장섰다. ● 1901년 6월 24일 경상남도 밀양 출생 ● 1919년 조선의열단 조직 ●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 1942년 중국 태행산에서 일본군과 대격전 ● 1942년 6월 3일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 순국 ●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