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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63 농기구회사에 취직했다. 선생은 여기서 발동기 운전과 수선기술을 배웠다. 일본인 직장에서 받았던 민족적 차별 선생이 반일 감정을 느낀 것은 매우 어렸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친구들과 진고개에 놀러 갔다 우연히 하얼빈에서 침략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봤다. 이때 안중근의 의거에 대해 친구들과 얘기를 했고 그를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선생이 본격적으로 반일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농기구회사에 있을 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정 사 정으로 취직했지만, 일본인 회사여서 차별을 받았고 병으로 강제 해고당하면서 그러한 의식이 더욱 뚜렷해졌을 것이다. 그 후 선생은 그 같은 반일의식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자 안중근과 같은 거사를 실행하기로 결정 했고 조선 총독을 목표로 삼았다. 총독을 제거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억압하는 일제에 투쟁하는 것을 보여 주고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했다. 거사를 실행하기 위해 신문이나 책 등에서 사이토 마 코토 총독의 사진을 보고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사이토를 처단할 칼을 구해 틈만 나면 칼을 갈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지고 뒷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상대로 칼 꽂는 연습을 했다. 융희황제 붕어로 결심한 사이토 마코토 처단 1926년 4월 26일 융희황제가 붕어하였다 는 소식을 들은 선생은 비통함을 참을 수 없 어 곧바로 창덕궁으로 달려가 망곡 대열에 참여했다. 융희황제의 빈소는 창덕궁에 마련 되었고 빈소의 출입문은 창덕궁의 서남문인 금호문이었다. 선생은 그 문을 통해 총독부 의 고관들이 출입하는 것을 보고 이곳에 총 독이 반드시 올 것으로 생각했다. 총독을 처단하기 위해 칼을 품고 며칠간 기다린 끝에 4월 28일 1시쯤에 금호문 안에서 세 명의 일 본인이 차를 타고 나오는 것을 봤다. 중앙에 앉은 자가 총독 사이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차,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사이토 총독이다”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선생은 바로 자동차 뒤 를 따라가며 실행의 기회를 엿보았다. 금호문을 빠져나온 자동차는 창덕궁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 잠깐 멈췄다. 선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동차로 뛰어올라 총독이라고 생각한 자를 향해 전광석화 같이 가슴과 배를 찔러 쓰러뜨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선생이 사이토로 생각하고 처단한 사람은 사 의거가 일어난 금호문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