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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의 퇴위를 강요했고 바로 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했다. 이어 대한제국 군대까지 해산시키자 공립협 회는 공동회를 개최하여 매국자 숙청을 결의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다. 이토 히로부미 제거를 시도하다 이때 이재명 의사는 실행자로 지원했다. 그해 10월 9일 사이베리아 선편으로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선생은 중 국과 노령 등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동지를 규합하고 일제의 침략 원흉들과 매국노들 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김구와 만난 의사는 그가 장래에 무슨 일 을 하려는가 물으니, “지금 하려는 일은 매 국노 이완용을 위시하여 몇 놈을 죽이고자 준비 중이다”고 말하며 단도 한 자루, 단총 한 정과 이완용 등의 사진 몇 장을 품속에서 내놓았다. 의사는 먼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1909년 1월 융희황제의 서도(현 평안도) 순행 때 이토가 동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재명 의사는 이토를 처단하고자 평양역에서 동지 몇 사람 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토가 융희황제의 곁에 딱 붙어 있었기에 의사는 황제의 안전을 생각 해 거사를 포기했다. 그 후 동지 김병록과 함께 서울과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다시 기회를 기다리던 중,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귀국했다. 이토가 제거되자 이재명 의사는 원래 목표인 을사5적을 비롯한 매국적 처단을 추진했다. 더이상 늦출 수 없던 이완용 제거 작전 기회를 엿보던 의사는 연말이 되자 더이상 기회를 미룰 수 없음을 알게 된다. 1909년 11월 일진회 가 한일합병을 주창하는 성명서를 공포했기 때문이다. 이에 선생은 1909년 11월 하순 평양 경흥학교 안에 있는 서적종람소와 야학당에서 여러 동지들을 모아 몇 차례에 걸쳐 실행 방법을 논의했다. 논의 끝에 이완용의 처단은 이재명 의사와 이동수, 김병록이 담당하고, 김정익, 조창호는 일진회 의 이용구를 처단하기로 했다. 같은 해 12월 7일에 최종적으로 역할분담을 확정했는데 오복원, 박태 이재명 의사(앞줄 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