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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53 ▒ 대통령장│이재명(李在明)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 앞에서 매국노 이완용이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은 같 은 해 10월 26일 결행된 안중근 의거와 짝을 이루는 거사였다. 안중근의 의거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을사 늑 약의 일본 측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일이라면 이 일은 한국 측 원흉인 이완용의 처단 시 도 였기 때문이다.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조국을 구하기 위해 돌아오다 이재명 의사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고향이 이북이기도 하지만, 이른 나이인 24살에 순국했기 때문이다. 선생에 대한 판결문에 의하면, 선생은 1887년 10월 16일 평안남도 평양군 평양성 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본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평양의 일신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 모집을 보고 하 와이로 갔다. 1906년 3월에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미국 본토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때는 공부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선생이 미국 본토에 도착했을 때는 을사늑약 강제 체결 소식이 미국에 알려지자 1906년 4월 샌프 란시스코에서 동족상애를 내세우며 안창호를 중심으로 창립되었던 공립협회가 항일 민족운동을 전 개하고 있을 때였다. 이재명 의사는 미국 본토로 건너온 직후에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항일 민족운동 에 동참했다. 선생이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시기인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일제는 광무황제 매국노 이완용 처단하고자 정의의 칼 든 독립투사 1906년 미국에서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독립항쟁을 전개하고 그 후 매국노 이완용 처단을 시도했다. ● 1887년 10월 16일 평안남도 평양 출생 ● 1906년∼1907년 미국의 한인 독립항쟁단체인 공립협회 가입, 활동 ● 1909년 명동성당에서 매국노 이완용을 비수로 찌르고 일경에 피체 ● 1910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