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page

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47 ▒ 대통령장│나석주(羅錫疇) 동양척식회사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경제적 수탈을 자행하는 일제의 기관이다. 1926년 12월 28일 이 곳 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던 청년은 이렇게 외쳤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2천 만 동포들아 분투하라, 쉬지 마라.” “조국 독립을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러 온 젊은이들입니다” 나석주 열사는 1892년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곳은 당시 애국 계몽운동단체인 신민회의 서북지방 책임자인 백범 김구가 설립한 양산학교가 있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소년 석주는 양산학교를 거치며 독립투사로 다져진다. 청년이 된 나석주는 1919년 독 립만세운동이 이 지방까지 번지면서부터 독립항쟁사에 큰 획을 그은 활동을 시작했다. 3월 하순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의 부호 최병항의 집에 6인조 권총강도단이 들었다. 이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강도답지 않게 모두 최 부자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저희는 일반 강 도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꾀하기 위해 군자금(軍資金)을 마련하러 온 젊은이들입니다.” 최 부자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는 당시로는 엄청난 거액인 무려 630원(圓)을 내 주었다. “저희가 떠나면 즉시 일경에 연락하여 권총 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하십시오. 일경이 눈치채면 봉변을 당하 십니다” 6인조 강도단은 신출귀몰하게 다른 부자들에게도 들이닥쳤고 수사망이 좁혀오기 시작하자 나석주 열사는 1920년 11월 22일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민족혼 피워 올린 열사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고 추적해오는 일경을 사살했다. ● 1892년 2월 4일 황해도 재령 출생 ● 1920년 황해도에서 결사대를 조직하여 군자금모집, 친일파 처단 활동 중국으로 망명, 이후 의열단 등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 ● 1926년 식산은행 폭파기도, 동양척식회사 폭탄 투척 후 일경과 총격전 ● 1926년 12월 28일 자결,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