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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45 쟁을 전개하기로 마음먹는다. 1920년 5월 혼자서 국경을 넘어 만주로 망명했다. 만주와 시베리아 등 각지를 다니면서 독립을 위 한 방법을 연구하고 함께할 동료를 찾았다. 1922년 4월경 의열단원인 장건상과 러시아로부터 막대 한 거사자금을 지원받기로 상의하고 그해 여름에 상해에서 일제에 대한 무력 투쟁 조직인 의열단에 가입했다. 중국에서 의열단 가입. 대대적인 국내 폭탄 의거 추진 의열단에 가입한 김지섭 선생은 서울로 돌아와 김시현 등 과 함께 총독부 등 일제기관을 파괴하고 일제 고관들을 제거 해 민족의식을 고취할 것을 계획한다. 국내에서 의거를 결행 하고자 폭탄 36개를 국내에 반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경지대의 삼엄한 경계로 폭탄을 들여오기 어려웠 다. 그래서 안동현에 중계소를 설치해 김시현, 유석현 등과 함께 국경 경계망을 뚫고 폭탄의 일부를 신의주로 반입시켰 고 나머지는 의열단에 입단한 황옥이 직접 서울로 운반했다. 황옥은 폭탄을 상자에 넣은 뒤에 총독부 물품이란 딱지를 붙여 대량의 폭탄을 국내에 반입했다. 황옥은 경기도 경찰부 의 한인 경부였고 국경시찰이라는 공용출장의 허가를 받아 상해에서 김시현 등과 동지가 되어 의열단에 가입했다. 그 후 김시현과 의형제를 맺었다. 반입된 폭탄으로 3월 15일을 기하여 총독부, 경찰서, 재판소,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등을 동시 에 폭파하기로 했으나 사전에 탐지한 일경에 의해 김시현 등 3명이 붙잡혔고 김지섭 의사를 비롯한 김원봉, 장건상 등은 삼엄한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겨우 상해로 건너갔다. 동경에서 열리는 제국의회에 폭탄 투척 결의 의거를 성사시키지 못한 김지섭 의사는 친일 부호를 상대로 군자금을 모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군자금 확보 계획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의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일왕을 타도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때에 1924년 동경에서 제국의회가 개최되고 이때 일제 총리를 비롯한 여러 대신과 함께 조선 총독이 참석한다는 정보를 신문보도를 통해 입수한다. 김지섭 의사는 의열단장 김원봉에게 “본인은 김지섭 의사와 벗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