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page

21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독립장│박장호(朴長浩) 공전절후한 대한독립항쟁이여! 주력이 그때를 얻고 동기가 그 세를 승한지라. 각국이 합체하여 만방에 정을 표 하여 국기와 특사가 파리평화회의 공인을 얻음은 전 지구가 우레같이 귀를 기울이는데 아주 한 모퉁이에 홀 연 히 고립하여 국교와 여론을 불고하며 정의와 인도를 무시하는 저 야만 왜놈의 존립이 몇 날이나 갈까? - 대한독립단 선언문 중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자란 위정척사 사상의 유학자 박장호 선생은 1859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어 린 시절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의 행적을 보면 화 서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청년이 될 때쯤에 병인양요와 신 미양요가 일어났으니 자연스럽게 위정척사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유학자로 자랐다. 1875년 운양호 사건으로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고, 1876 년에는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다. 이때 선생은 위정척사파인 유 인석, 홍재학 등의 유생들과 함께 개화정책에 반대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린다. 그러나 선생과 유생들의 잇따른 상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침략은 하나씩 대한제국의 목을 졸라갔고 결국 1905년 을사늑 대한독립단 도총재로 조국의 독립전쟁 지휘하다 국권 침탈에 대항해 강원도 홍천에서 관동의병을 일으켰으며 한일강제합 병 이후 만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대한독립단을 창설하고 도총재에 취임 해 많은 항일 투쟁을 지휘했다. ● 1859년 황해도 장연 출생 ● 1906년 관동의병 의병장 ● 1919년 대한독립단 창설, 도총재 취임 ● 1921년 7월 유하현 서구 대화사에서 피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박장호 선생이 1977년에 쓴 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