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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13 립전쟁을 위한 조직이었다기보다는 관할 구역 내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사실상 자치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에 가까웠다. 그래서 무장활동 우선이냐, 자치가 우선이냐는 논쟁으로 군정파와 민정 파로 갈리는 갈등이 생겼다. 김규식 선생은 그동안의 활동과는 다르게 2 세를 교육해 장기적인 항일투쟁에 대 비하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독립군 인 재양성에 주력했다. 일선에서 물러나 자치 기반을 닦는 데 주력 1920년대 후반에 들어 만주지역에 흩어져 있는 독립항쟁단체를 통합하는 민족유일당을 결성하 려는 활동이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의 통합 시도가 있었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됐지만, 아직 참여하 지 않은 곳이 많았다. 김규식 선생도 민족유일당 운동에 동참해 통합을 주도했지만 완전한 통합엔 실패했다. 민족유일당 결성운동이 실패한 직후 김규식 선생은 연수현에서 교육과 자치 활동에 집중하고 있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생은 1930년 7월경 위하현에서 결성된 한국독립당의 부위원장으로 취임했 다. 선생은 명예직에 가까운 비상임 부위원장이었으며 표면기관인 한국자치연합회의 간부도 아니어 서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1년 3월경 선생은 한족자치연합회의 본부가 있던 주하현 하동농장을 방문했다. 지청천, 신숙 등과 만나 장래 운동을 협의하고 연수현에서 운영하고 있던 학교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데 하동농장에서 부정을 저지르던 백운봉과 최호 등은 김규식 선생이 자신들을 처벌하기 위해 왔다 고 오해하여 선생과 일행이 머물던 한족자치연합회 주하지방 집행위원장인 이붕해의 집을 습격하여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52세 때였다. 중국 왕칭현(汪淸縣)에 세워졌던 북로군정서의 사령부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