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page

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07 최석순 선생은 참의부에서도 제2중대장과 참의장 등의 중요한 직책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민주공화제를 지향했는데 복벽파이던 대한독립단에서 활동한 전적에 비춰보 면 그간의 사건이 선생의 생각을 크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참의부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회의 도중 전사 1924년 5월 19일 12시 30분경 선생 휘하 참의 부 제2중대 1소대 소속의 장창헌 이하 8명의 대 원은 평안북도 위원군 건너편의 언덕인 마시탄 에서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 일대 국경지대를 순 시하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일행이 탄 배에 총격을 가했다. 참의부 독립군의 사이토 총독 저격사건은 만 주 독립군단체를 크게 고무시킨 반면, 일본 정 계에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으 로 조선총독 사이토는 일본 제국의회에서 질책 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일제는 만주 독 립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정책을 추진한다. 조선총독부 군경은 밀정을 동원하는 등 온갖 수법으로 독립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밀정을 통해 독립군 간부들이 고마령에서 회의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제는 일본군 초산수비대 120여 명과 경찰대 65명을 합동으로 출동시켜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 회의장소를 급습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현장의 독립군 간부들은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결국 최석순 선생을 비롯한 참의부 간부의 상당수가 사망하고 말았다. 고마령 참변은 참의부 역사상 최대의 참사였으며 독립군 에게 엄청난 타격이었다. 조선총독 사이토 저격사건을 다룬 독립신문 기사(1924년 5월 31일)로 머 리기사는 ‘적괴(敵魁) 사이토를 습격’이란 제목이었다. 이때 ‘독립신문이 ‘우리 의용군 제1중대의 용투’라는 중제목을 뽑은 이유는 참의부가 대한 민국 임시정부 산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