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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직해 대한통의부에서 분리를 선언한다. 채상덕 선생은 의군부 총장으로 활동했는데 유학자로 1895 년 을미의병에 참여했던 만큼 그가 조선왕조의 복원을 원하는 복벽주의자였던 것은 당연할 것이다. 후대의 독립항쟁을 위해 젊은 독립투사를 키우다 의군부는 융희 연호를 사용하고, 통의부를 적 대시하며 통의부에서 관할하던 각 지방을 점령 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채상덕 선생은 의군 부 총재로 취임했으나 금방 은퇴했다. 이후 선생은 참의부 활동에 관여한 것으로 보 인다. 참의부는 대한통의부의 분열 상황에서 만 들어진 임시정부 산하의 직할 부대다. 당시 선생 은 “나는 늙고 기력이 쇠퇴하여 활동할 수 없으 니 장래가 있는 청년들에게 독립을 위해 일해 달 라”며 후대 양성에 힘을 기울였고, 참의부 간부 중에 선생의 제자와 부하들이 많았다. 참의부는 무장독립항쟁단체로 일제에 대한 파괴 활동과 함께 5월 19일에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이 국경지방 치안상태를 시찰하기 위해 경비정으로 압록강 하류로 내려올 때 이를 기습 공격하 기도 했다. 1925년 3월 16일에 만주 집안현(輯安縣) 고마령에서 간부 회의를 하던 중에 밀고자에 의 해 위치가 발각되어 일본 경찰대에게 습격을 받아 간부 29명이 전사하는 막대한 희생을 당했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이수흥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선생은 분통을 감추지 못하고 “내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 있으면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며 이수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결 순 국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 대원들. 192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 다. 참의부는 사이토 총독을 저격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