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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대한민국장 │김좌진(金佐鎭) 장군 일제는 만주에 있던 독립군이 한반도에 진출하면 식민통치가 불가능해 진다는 판단에서 사건을 조작해 2만여 명에 달하는 군단급 병력을 만주 로 파견한다. 독립군 3천~4천여 명, 일본군 3만~3만 5천여 명이 벌인 전투에서 독립군은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뒀다. 그때 독립군 사령관이 김좌진 장군이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평생의 신념 김좌진 장군은 1889년 12월 16일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 서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공부보다는 활쏘 기와 말타기 등의 병정놀이를 즐겼는데 대장기에 “억강부약(抑 强扶弱)”이라고 썼다.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것은 돕는다”는 뜻 이다. 병정놀이에서만 내세운 말은 아니었다.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친구를 보면 자신의 옷과 바꿔 입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으며, 조국 독립을 가장 큰 가치로 청산리대첩의 최고 주역 김좌진 장군 동상 대한광복회 부사령으로 활동하고 대한군정서 사령관으로 1920년 한국독 립군 전투사상 최대의 성과인 청산리대첩의 승리를 이끄는 등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 1889년 12월 16일 충청남도 홍성 갈산 출생 ● 1908년 호명학교 설립 계몽운동 ● 1917년 대한광복회 부사령 ● 1920년 대한군정서 사령관으로 청산리대첩 ● 1925년 신민부 총사령 겸 군사부 위원장 ● 1929년 한족총연합회 결성 ● 1930년 1월 24일 (40세)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산시진 정미소에서 피살,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