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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81 ▒ 독립장│이석용(李錫庸) 천고의 강상을 짊어짐은 중요하고 / 삼한의 해와 달은 밝게 비치는데 외로운 신하 만 번 죽어도 마음 변치 않으니 / 사람으로 머리 숙여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네 - 이석용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선 효보다 충의를 중시한 선비 이석용 선생은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 중에서 이목과 그의 아들 이세장이 급제해 관직에 진출해 이름을 알렸으나 그 이후에 관직에 나간 사람을 배출하지 못하고 임실의 향반으로 살 아갔다. 선생은 1878년 음력 11월 29일 갑술일에 태어났다고 어려서 갑술이라 불렸고 손아래 누이 2 명과 함께 3대 독자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선생은 옛사람들이 충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일들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부 친이 도박으로 시간을 보내자 어린 선생이 '아버지가 잡기를 하면 자식은 어찌하란 말입니까?'라고 말해 도박을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직언도 서슴지 않는 비범함을 보였다. 8세에 비로소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한 번 읽으면 대부분 암송할 정도로 영특했다. 1895년에는 명성황후 살해 사건과 단발령이 내려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선생도 학업을 중단 하고 분통해 했지만, 스승의 “마음만으론 위급함을 구할 수 없다”는 말에 마음을 잡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외로운 신하 만 번 죽어도 마음 변치 않으니 진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비밀 결사 임자밀맹단을 결성했다. ● 1878년 11월 29일 전라북도 임실 출생 ● 1907년 진안 마이산에서 의병을 일으킴 ● 1912년 임자밀맹단을 결성해 남원, 전주, 임실 등지에서 활약 ● 1914년 4월 4일 대구형무소에서 사형,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