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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17 국모를 살해하고 머리카락까지 자르라니 | 을미의병(전기)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기관으로 군국기무처를 수립하며 노골적으로 내 정간섭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조선은 일제의 강압에 서 벗어나기 위하여 러시아와 손을 잡고 친일세력을 제 거하는 한편, 일본 장교가 훈련시킨 군대를 해산시키기 로 하였다. 자신들의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일제는 우선 친러 세력인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1895년 10월 8 일 새벽 5시경 수십 명의 괴한들이 경복궁으로 들이닥쳤 다. 미우라 고로 일본 공사가 지휘한 일본군과 경찰, 자객 들이었다. 이들은 왕비 침실인 건청궁을 습격하여 명성황 후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였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조선의 국모를 살해한 일제는 김홍집, 유길준, 서광범 등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통하여 을미개혁을 단행하였다. 특히 단발령, 변복령(서양식 의복 착용) 등을 강제로 시행하여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단절시키고자 했다. 갑작스런 개혁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속출하였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효의 상징이었던 상투를 자 르도록 한 단발령에 대하여 전국의 유생들이 거세게 반발하였다. 국모가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전통 의 두발과 의복 문화까지 강제로 말살되는 지경에 이르자 전국의 양반 유생들이 불같이 일어났으며, 일반 농민과 동학 농민군도 가담하였다. 무능한 정부를 대신하여 일제를 몰아내고 나라를 지켜내기 위하여 의병이 일어난 것이다. 1895년 을미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을미의병이라 부른다. 경상도 안동에서 일어난 의병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 중부지방으로 확대되고 전라도, 평안 도 , 함경도까지 확산되었다.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들이 항쟁을 주도하였는데 유인석, 이강년, 이소응, 허위 등의 의병장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특히 유인석은 자신의 근거지인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3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충주성을 점령 하는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일제의 지원을 받은 관군에게 패한 뒤, 후일을 기약하며 군사를 이끌고 만주로 건너갔다. 그런가하면 김하락 의병장은 경기도 이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2천 여 명의 의진(義陣)으로 남한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내부 변절자들로 인해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일제는 단발령, 변복령 등을 강제로 시행하여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단절시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