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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독립장│고광순(高光洵) “한 번 죽어 나라에 보답하는 것은 내가 평소 마음을 정한 바이다. 여러분은 나를 위해 염려하지 말고 각자 도 모 하라.” 이에 부장 고제량이 죽음을 함께 할 것을 맹약했다. “당초 의(義)로써 함께 일어섰으니, 마침내 의로써 함 께 죽는 것이 당연하다. 죽음에 임해 어찌 혼자 살기를 바라겠는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의 후손 고광순 선생은 1848년 2월 7일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충청도 금산에서 순국 한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 삼부자의 가문이었다. 고광순은 그 가 운데서도 고인후의 제사를 모시고 있는 후손이었으니 태어나면서 부터 절개와 의리가 높은 선비의 기운을 타고났다. 어려서부터 고광순은 재능이 뛰어나고 행동이 남달랐다. 외조 부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얼마 후 그가 종가의 양자로 가게 되자 외조부는 외손들 가운데 제일가는 아이를 빼앗겼다며 아쉬워했다 고 전해진다. 선생은 학문에 전념하면서도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 가 남다른 데다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덕을 좋 아하는 군자로 칭송됐다. 고광순은 젊은 시절 과거에 응시한 적이 일제조차 고충신(高忠臣)이라 감탄한 호남의 의병장 1906년에 의병을 일으켰고 노구의 나이를 이끌고 일제와 싸워 호남지역 의 의병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 1848년 2월 7일 전라남도 담양 출생 ● 1895년 광주의진 참여 ● 1906년 창평에서 거의, 의병장으로 활동 남원·화순·능주·화개 전투에서 승전 ● 1907년 10월 16일 지리산 연곡사에서 전사,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