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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를 경험하고 덕유산으로 귀환한 선생은 심기일전하여 다시 항일전의 기치를 드높이 세웠다. 망국의 한을 품고 옥중에서 자결 1908년 2월 28일 이종성을 선봉으로 60명의 의병을 이 끌고 일제의 무주 헌병주재소를 습격, 적 5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외곽에 주둔 중이던 적의 반격을 받아 선생은 적에게 체포되고 말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사 지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무주에서 퇴각한 선생은 이후 흐트러진 전열을 재정비 하고 인근 부대와 연합전선을 형성하며 항일전을 지속했 다. 1908년 4월 10일에는 일제 주재소와 관공서 등을 공 격했으며 1909년 10월 30일 선생이 이끄는 의병은 이원 역에서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화물열차에 적재하는 광경 을 목격하고 이를 습격했다. 1909년 하반기가 되자 일제는 집중적인 공격에 나선다. 문태수 선생의 의병은 계속되는 전투로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1911년 여름, 8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장수로 들어가 헌병대를 기습한 끝에 10여 명의 일제 군경을 사살하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했다. 그러나 추격해온 일제 군경의 파상적 공격으로 전력 대부 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선생은 이때 겨우 탈출에 성공하여 덕유산을 넘어 함양 안의 방면으로 피신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곳에 몸을 숨기며 피신을 하던 선생은 1911년 8월 17일 일시 고향을 찾았다가 일제의 사주를 받은 지인들의 흉계에 속아 체포되고 말았다. 이로써 5년간에 걸친 선생의 항일전은 종막을 고하게 됐다. 문태수 선생은 시종 기개를 굽히지 않다가 1913년 2월 4일 34세를 일기로 자결 순국했다. 전남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문태수 의병장 순국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