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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39 ▒ 대통령장│남상덕(南相悳) 대한제국군들의 용감한 방어는 심지어 적군도 높이 찬양하였다고 하면서, 적어도 며칠 동안은 일인들은 그들 이 이전에 말해온 이상으로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 멕켄지(mackenzie) 기 자 일본군이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는 가운데 있었던 소집 1907년 8월 1일 오전 7시 군부대신 이병무는 각 시위 대대 장을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의 관저인 대관정에 소집하 여 융희황제의 조칙을 하달했다. 이때 사령관 하세가와와 군 부고문 노즈가 배석했는데, 조칙 하달 후 맨손체조를 실시한 다는 명목으로 오전 10시까지 시위대 장졸들을 훈련원에 모 이도록 했다. 당시 대한제국 군대의 편성은 서울에는 시위 제1, 제2연대가 있어 산하에 각기 3개 대대 규모를 두었다. 지방에는 수원을 비롯하여 청주, 원주, 대구, 광주, 해주, 북청, 안주 등 8개의 주요 지역에 진위대를 두는 한편, 각 진위대에는 분견대를 두고 있었다. 훈련원은 조선의 개국과 함께 서울 동대문 운동장 부근에 만들어진 무관시험, 무예연습, 병법에 대한 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이날 이곳에는 조선주차군 참모장 무다(牟田), 군부고문 노즈 및 한국 대한제국 지키는 마지막 불꽃 정미의병의 도화선 되다 일제의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항의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 1881년 경상남도 의령 출생 ● 1906년 시위대 제2연대 제1대대 보병 참위 ● 1907년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일본군과 시가전 ● 1907년 8월 1일 전사,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구한 말 당시의 대한제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