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page

138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진중일기 영남과 인근 지역은 당시 의병부대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이었던 까닭에 이들과 함께하면서 효과 적인 투쟁을 위한 것이었다. “욕을 당할 바에야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겠다” 1896년 4월 28일 의성에 도착한 선생의 의진은 금성산에 있는 수정사를 근거지로 정했다. 5월 13일에는 이곳에서 활 동 중이던 김상종 의진과 합세하고 이어 청송의진도 가담시 켜 의성연합의진을 만들어 대승을 거뒀다. 이로 인해 각면에서 군수 물자를 보충받고 병사들을 추가 모집하여 의진을 확대 개편할 수 있었다. 5월 20일 비봉산에 서 적군 100여 명과 교전해 재차 승리를 거뒀다. 적은 병력 을 증원하여 반격을 가해 전세가 불리해지자 퇴각하여 경주 로 이동한다. 경주성을 점령한 선생은 각 면 유지들에게 격문을 보내 의병 활동에 적극 호응케 하는 한편 병사 들을 성내 곳곳에 배치하여 철통 같은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2주간 계속된 전투로 탄약이 떨 어지고 병사들 또한 동요함에 따라 결국 경주성을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후 선생은 영덕으로 이동해 영덕의진, 영해의진, 안동의진 등과 대규모의 연합의진을 형성했다. 김하락 선생은 연합의진을 이끌고 적군과 싸웠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의병들은 사방으로 흩어 졌고 선생은 이 와중에 2발의 탄환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김하락 선생은 왜놈들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겠다고 하며 강물에 투신했다. 경상북도 영덕의 남천수 전경. 1896년 7월 김하락 의병장이 전투를 벌이다 순국한 곳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