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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135 의병탈주 일제문서 의 이동은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일본군을 상대로 후방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유격전을 벌이다가 대규모 전투수행 시 상호 연합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주로 이동해 독립투쟁을 하기로 결심하다 일제는 강기동 선생에게 현상금을 내걸고 대규모 의병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순사와 밀정들을 변장시켜 그가 활동하던 광주·포 천·양주지방을 샅샅이 뒤지는 등 강기동 체 포에 혼신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체포에 실패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일본군의 공격에 강기동의 좌군 전성서 휘하의 한인수와 김순복이 붙잡 히는 등 강기동 의병부대는 상당한 타격을 입 게 된다. 더이상 소규모 부대의 유격전으로는 일본군을 궤멸시킬 수 없음을 깨달은 강기동 선생은 군자금을 더 모아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군으 로 전환하고자 결심했다. 전투를 벌이며 점점 북상하여 가던 중 일제는 1910년 9월 하순부터 40여 일간에 걸쳐 황해도 지역 내 의병 대토벌작전을 시작했다. 더 이상 국내에서 활동하기 힘들어진 강기동 선생은 북간 도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동하던 도중 1911년 2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일본군에게 잡혔고 서울로 압송된 강기동 은 4월 17일 오전 8시 28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 용산 일본군 행형장에서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