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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대한민국장│허 위(許蔿)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盡忠竭力)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국욕(國辱)을 받 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허위 는 관계(官界) 제일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 - 허위 선생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평 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 의병을 일으키다 허위 선생은 1854년 4월 1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 면 에서 태어났다. 허위 선생의 위로 세 명의 형이 있 었는데 둘째 형은 어릴 때 죽었고 첫째 형인 허훈은 퇴계학파를 계승한 성리학자이며 셋째 형 허겸은 독 립투사였다. 허위 선생의 집안은 대대로 이름 높은 학자 집안이 었다. 당연히 선생도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으며 허전, 유주목 같은 당대 최고의 학자 밑에서 공부를 하며 8살 때에 시를 지어 주변을 놀라게 하는 등 어 곧은 기개의 충절 지닌 구국 애민의 불세출 의병장 명성황후 살해에 분개하여 1896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1907년 군대해산 후 경기도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13도 창의군 군사장 으로 서울 진공작전을 수행했다. ● 1854년 4월 1일 경상북도 선산 출생 ● 1896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거의, 의병 활동 ● 1907년 경기도에서 재차 거의, 의병 활동 ● 1908년 13도창의군 군사장으로 서울 진공 ● 1908년 10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왕산 허위선생 유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