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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동학교를 중심으로 은진, 창동, 정동, 명신학 교 등을 세워 교육을 통한 애국지사 양성에 힘 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훈춘 나자구(羅子溝)에 사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11 년 중국의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화민국이 탄 생하고 약소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자 간민 교육회는 간민회로 확대, 발전하여 한인의 자 치활동과 독립운동을 보다 활기차게 전개해 나갔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군 사령부 유적지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북간도 지역에서는 많은 항일독립운동의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황 병길과 박치환 등을 중심으로 훈춘에서는 건국회가 창립되었고, 최봉설, 임국정이 중심이 된 철 혈광복단, 화룡현 태랍자에서는 명동과 정동학교의 직원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충열대가 조직되 었다. 그리고 최경호를 중심으로 연길현 국자가에서는 자위단이 결성되었고, 김영학을 중심으로 는 조선국민의사회가 설립되었으며 간 도독립기성회 등 여러 단체가 조직되었 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상해에서 대한 민국임시정부가 조직되고 헌법이 공포 되자 연길(延吉), 왕청(汪淸), 화룡(和 龍), 용정의 대표자들이 왕청현 하마탕 에 모여 1919년 11월에 대한국민회(大韓 國民會)를 결성하였고, 회장에 구춘선 (具春先), 부회장 서상용(徐相庸)이 담 임하였다. 항일투쟁의 도시 용정(龍井)과 윤동 주 시인 윤동주는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나 1936년 민족학교인 명동학교를 졸업한 후 광명중학교에 진학하 여 시(詩) 작품을 통한 항일민족정신의 기초를 닦았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한 후 송몽규(宋夢 간민회 유적지, 연길시 서동호동 연길도윤터 대한국민회군 사령부 유적지, 연길시 의란구 춘흥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