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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101 한 것이 경학사(耕學社)의 조직과 신흥 강습소의 설립이었다. 이들은 삼원포 대고산에서 군중대회를 열어 경학사 조 직을 결의했다. 경학사는 서간도 이주 민을 위해 농업 등 실업과 교육을 장려 하고, 장차 군사훈련을 시키기 위해 만 든 결사(結社)조직이었다. 1911년 5월 (음력 4월) 최초의 만주지역 항일자치 단체로 개간과 영농에 종사하는 경학사 (耕學社)를 조직하여 이상룡이 경학사장에 추대되고, 그 부속기관으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치 했으며, 민족독립운동에 있어서 산업·교육 우선주의와 군사중심주의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민단과 신흥중학교를 합니하에 세우다 1912년 봄, 중국인의 텃새와 방해공작, 자연재해, 풍토병 등으로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 하기 위해 유하현 추가가에서 동남쪽으로 90리 떨어진 통화현 합니하(哈泥河)로 이주했다. 그곳에 서 1912년 7월 20일(음력 6월 7일), 100여 명이 모여 신흥학교 낙성식을 가지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 하기 위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하였다. 신흥중학교 위치는 바로 합니하가 학교 주위를 거의 360도 휘 돌아 흘러 마치 해자(垓字)처럼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비로소 서간도 합니하에 모두가 염원하 던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경학사 신흥강습소 창설 유적,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촌 대고산 신흥무관학교 유적지 통화시 광화진 합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