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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전국 3대의거 원곡·양성 3·1운동 진원지 이곳은 1919년 3·1운동 때 일본 제국주의의 무단통치에 항거하여 전국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원곡·양성 3·1운동의 진원지이다. 원곡주민들은 그해 3월 25일부터 매일 이곳에 모여 만세시위를 거듭하다 4월 1일 저녁 이유석·홍창섭·이덕순·이근수,·이희룡·최은식 등의 주도로 1천여 명이 대열을 지어 이웃 양성면으로 돌진 그곳 주민들과 합세하여 경찰관 주재소·면사무소 등 일제 통치기관과 일인 상점들을 방화·파괴하고 일본인들을 몰아냈다. 이어 4월 2일 새벽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원곡면사무소를 불태웠다. 또한 시위대는 평택의 경부선 철도를 차단하고 부근 남산에서 실력항쟁을 벌리고자 준비하다 일본군의 잔혹한 탄압을 받았다. 안성 서부지역을 2일간 해방시킨 전국에서 유례없는 용감한 항쟁으로 황해도 수안, 평북 의주와 더불어 전국 3대 실력 항쟁지로 꼽힌 이곳은 피검 361명, 순국 24위, 옥고 117명, 태형 40명, 민가 소실 9동의 피해를 입었으며, 공공시설 훼손 배상 및 취학방해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에 80년 전의 위대한 역사를 밝혀 선열들의 빛나는 독립정신과 불굴의 민족혼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이 표석을 세운다. 3·1운동 80주년을 맞아 1999년 7월 17일 독립기념관 관장 박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