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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9월30일 토요일 5 (제201호) 관향조 종친회 무숙공파에서는9월13일오전11시30분 에경기광주시장지동에있는숭모재에서 병효 고문, 병인 회장을 포함 16명의 이사 감사진이참석한가운데임시이사회를가 졌다. 회장의인사말에이어본종회의발전에 오랫동안기여하시다한달전에작고하신 고박건하전회장을기리는묵념의시간을 가지고 성일 사무국장의 경과보고와 종회 현황 설명에 이어 안건 토의를 하여 아래 와같이결정하였다. 1. 자산관리위원회에서 제출한 븮산54번 지 일대 개발계획븯에 대하여는 개발 가능 한 10,000여평에 대하여는 우선 개발에 문 제점이 없는 3,000 평에 대하여 승인하고 구체적인 개발 계획서를 내년도 정기이사 회와총회의승인을거쳐서시청에개발계 획서 제출을 시작으로 개발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2.종회 발전에 수고하시는 회장단과 이 사님들의 노고에 답하는 의미에서 종회의 재정을감안하여추석명절에선물을보내 기로하였다. 3. 한글로 작성된 시제 홀기를 승인하고 시제절차를간소화하는방안을토의승인 하고시행은내년부터하기로하였다. 4.경조사비는10여년전에책정되어시 행하고 있는바 이를 현실에 맞게 소폭 인 상하기로하였다.토의를완료하고정담을 나눈 후 오후 1시 10분에 마치고 식사와 환담을 나누고 11월의 시제 때 만남을 기 약하며2시30분에모두마쳤다. 자료출처/고령박씨대종회카페‘고양대군의집’ 무숙공파임시이사회개최 성일사무국장의경과보고와 종회현황설명에이어안건토의 밀양박씨 복야공 후경주부윤공파종중 (회장 동용)은 지난 1 2일구미‘경주부윤공 파 봉 곡 기 념 관 ’ 에 서 종중 원로분을 모시 고 경로잔치를 열어 효 사상을 고취하고 종친간 애종을 돈독 히 하는 뜻 깊은 시간 을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93세의 최고령자인 박희 옥 원로 현종을 비롯하여 20여명의 원로 분들께서참석하였다. 특히 밀양박씨 복야공파대종회장으로 계시는 박만준 회장님께서 참석하시어 자 리를빛낸가운데박동용회장은인사말을 통해 종중의 산 증인이시며 그간 종중 발 전을 위해 수고해 주신 그 노고를 잊지 않 고 늘 존중과 감사의 마음으로 여러 원로 분을 모시고자 하오니 건강하시고 앞으로 도 종중 발전을 위해 좋은 말씀 많이 부탁 하며인사말로갈음하였다 박만준 복야공파대종회장은 격려사를 통해종중에서원로분들에게이렇게관심 을 가져주고 오늘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 니 고마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며 앞으로 도 여러 종원이 화합하고 서로 사랑하며 숭조, 애종의 마음으로 종중 발전에 힘써 주길당부했다. 이어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종중에서 신라시조왕의 적장자 밀성대군 가문을 상 징하는 밀성세가(密城世家)가 새겨진 밀 성(밀양)박씨 배지(徽章)를 준비하여 한 분 한분에게 정성스럽게 달아주며 자부심 을심어주고그간의노고에감사를표하며 아울러 금일봉을 드리면서 격려하는 시간 을보냈다. 경주부윤공은밀성박씨복야공后이요 당공의 8세손으로 휘는 수홍(諱 守弘 字 裕彦)으로호는봉곡(逢谷)이다. 광해10년(1618) 문과에 등제 성균관 전 적(典籍) 예조정랑(禮曺正郞) 춘추관 기 주관(春秋館 記注官)을 역임하였으며, 인 조5년(1627)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어가 (御駕)가 강화도에 파천(播遷)할 때 호종 (扈從)하였다. 이후내외직을두루거쳐형조참의를역 임하고 인조 8년(1640) 경주부윤(慶州府 尹)에 제수되었으며 향년 57세로 별세하 니 인조대왕께서 애도(哀悼)하시며 사제 문(賜祭文)을하사하였다. 그리고그후손들은번성하여구미봉곡 재를중심으로전국각지에거주하고있어 경주부윤공파 종중에서는 80세 이상 원로 분을모시고맛있는보양식으로식사도하 면서서로담소도나누는행사를앞으로도 년 1회 이상 지속적으로 진행한다고 밝혀 이날의행사가더큰의미를갖는다. /자료제공박세득부윤공파사무국장 밀양박씨경주부윤공파종중경로잔치 개최 연1회원로분을초청효사상고취,노마지지(老馬之智)의뜻되새겨 박동용회장 경주부윤공파종친회에서는지난12일원로분들을초청경로잔치를열고어른들의지혜를종중에접목시키는등효사상고취에심혈을기울였다 . 밀양박씨복야공파대종회만준회장조카세현군 ‘대검찰청형사부장’승진 수사·기획 능력이 뛰어나 기수중 에서도항상선두를달려왔던서울고 등검찰청 박세현 형사부장이 2023년 검찰고위급인사에서대검형사부장 으로9월7일자승진발령받았다. 차분한성격에성품까지좋아후배 들에게도존경받는검사로이번승진 발령은예견되었던일이라는박부장 은 박순용 전 검찰총장의 아들로서 부자 검사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밀양박씨 복야공후 이요당공파 경 주부윤공후예로1975년생인박부장 은 서울대 법재 재학중 1997년 제39 회사법시험에합격하였고이듬해서 울대를졸업했다.1999년 사법연수원 을 졸업후 2000년 육군법무법무관을 거쳐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중앙지 검에서초임검사로근무했다. 2007년 미국 워싱턴죠지타운대학 에 유학하여 법학석사 학위 및 뉴욕 변호사자격을취득했다. 부산지검·법무부·서울서부지검 등을 거쳐 2013년부터 2년 동안 법무 부 검찰과 부부장검사, 인천지검 형 사3부장 등을 거쳐 서울고검 형사부 장에 이어 이 번 대검 형사 부장을 맡았 다. 박 부장의 아버지는 김 대중 정부에 서검찰총장을지낸박순용(74)변호 사다.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을 거친 ‘특수통’인 박 전 검찰총장은 TK 출 신이라는이유로김대중정부에서홀 대를당하기도했다. 당시검찰안팎에서는호남출신의 신승남 당시 대검 차장이 실세라는 말이나왔다. 박부장의외할아버지는고(故)김 용제전서울지검장이다.사법시험의 전신인 조선변호사시험의 제1회 합 격자이기도 한 김 전 검사장은 대검 에서 재직하던 중 1972년 3월 사망했 다.박부장이태어나기전의일이다. 아버지박순용검찰총장에이어부자검사장기록세워 의성군은 의성 출신으로 실학운동 의 선구자로 공헌한 율정 박서생을 소재로 한 뮤지컬 븮박서생븯을 지난 8 월 24일부터 27일까지 오후 7시30분, 남대천 구봉공원 특설무대에서 지난 해보다 한층 더 높아진 완성도로 지 역민의기대치에화답하며많은박수 갈채를받았다. 지난해에 성황리에 마친 뮤지컬 븮박서생븯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한 차원 더 완벽한 구성과 화려해진 모 습으로무대에올려율정선생을새롭 게조명하는계기가되었다. 율정박서생은58살이라는늦은나 이에 세종대왕의 명을 받고 일본을 다녀온조선최초의통신사로모두가 꺼리던 긴 여정과 험난한 바닷길을 헤치고, 최초의 통신사 파견을 마친 후 수차 사용을 건의하여 농사관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등 청년의 도전 정신을 지닌 혁신적인 인물이 다. 올해는박서생의진취적기상과정 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화려한 3D 비 디오프로젝션기법에특수효과를더 하는 한편,한 단계 더 끌어올린 음악 적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 등이 어 우러지면서지난해보다더화려한볼 거리와재미를제공했다. 주인공 박서생 역은 TV 드라마에 서 얼굴을 알린 조유신이 맡았으며 세종대왕 역은 국내 대극장 뮤지컬 작품에서주연으로활동한뮤지컬배 우 김준현이 새롭게 참여하였고, 이 외에도 심정완,김형균,김경택,이하 경등의뮤지컬배우와의성군합창단, 태권도 시범단, 지역출신 군민배우 등 100여명의 배우들이 여름 무더위 에지친의성군민들에게즐거운시간 을선사했다. 이번작품의연출을맡은(사)극단 맥 이정남 대표는 개막전 “올해에는 3D 비디오 매핑에다 불꽃놀이와 물 대포등의특수효과로관객들의눈길 을사로잡을것”이라며“특히지난해 보다한 층더 짜임새있는 스토리전 개와 더 완벽해진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력 등을 통해 주제 의식이 잘 드 러나는 스펙터클 한 장면을 구현해 관객에게완성도높은공연을선사하 겠다”라고말했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지난해에 이 어 올해도 의성 출신 율정 박서생의 혁신적인 청년정신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되길바란다”라며“더나아가 우리지역을넘어우리나라를대표하 는 공연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라 고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지역주민들의 참여 는 더욱 볼거리를 제공했다. 태조 이 성계 역에 카메오(특별출연)로 신원 호의성군노인회장이무대에오른것 을 시작으로, 김진욱 의성소방서장, 장근호의성경찰서장,김성중의성교 육지원청교육장이출연하였으며,이 외에도군민참여배우(의성군합창단 ·태권도시범단·일반참여자)가 국내 뮤지컬 분야에 이름난 주·조연급 배 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뜨거운 무 대를선사함으로서지역주민과함께 하고 더 나아가 이를 전국민에게 알 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후문이 있어 특별한행사로마무리되었다. 박서생 선생의 호는 율정(栗亭)이 고 본관은 병산(屛山)이다 고려 말 흥위위(興威衛) 보승중랑장 점(漸) 의아들이다. 그는태어날때부터남달리상서로 움이 있었던 까닭에 이름을 서생(瑞 生)이라 지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에 도 질탕하게 노는 것을 즐거이 하지 않았고, 뚜렷한 대인의 뜻을 간직한 채글읽기를좋아했다. 여말 3은(三隱) 중 한 사람인 야은 (冶隱) 길재(吉再)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면서 문명(文名)을 드날려 야 은의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됐다. 박서 생은 조선 태종 신사년(1401)에 문과 에 급제했고 6년 뒤인 정해년에는 중 시에거듭합격해우정언(右正言)지 제교(知製敎)에 임명됐다. 그 후 세 종 신축년(1421)에는 임금이 친히 나 와 “하늘과 사람이 서로 느끼는 이치 에 대하여 논하라”는 제목으로 과거 를 보일 때에도 당시 헌납 벼슬에 있 던 박서생이 또 장원의 영광을 차지 해 당시 조정 주변에서는 그를 “팔도 장원”이라일컬었다. 이러한 그는 관직에 있을 때 언제 나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을 정 도로 청렴했고, 두 차례에 걸쳐 성균 관에 있을 때에는 매일 여러 생도들 과 더불어 의리를 논하여 밝히기도 했으며 예절에 대한 모든 제도를 강 의하면서 몸소 익히고 실천에 옮겼 다.따라서 당시 생도들은 그의 이 같 은 생활방식을 택해 하나의 법으로 삼고공부에정진해나갔다. 언젠가그가비안에서선산으로옮 겨 살게 되자 스승인 야은(冶隱)이 자신의 소유인 산을 반으로 나누어 그에게 주기도 했다. 박서생은 자신 의 중년기에 일본에 사신으로 가 1년 여 체재한 것이 견문을 넓힌 좋은 계 기가 됐고, 이때의 체험을 조정에 상 주,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이후 조선 후기 실사구시(實事求是)등을 이념으로한북학파와실학파에많은 영향을끼친것으로전해진다. 이조 세종 때 이조참의 박서생 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왔을 때의 얘기다. 그는 모든 일행들을 야무지 게 단속해 언제나 검소하고 절약할 것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수행한 아전이나 통역관들이 사사로이 외교 (外交)하는일이없도록엄격히통제 했다. 심지어 일본 정부가 의례적으로 주는 예물까지도 하나도 받지 않았 다. 자연 1년 이상 만에 귀국길에 오 른 그의 행장은 쓸쓸할 만큼 텅 비어 있었고, 당시 일본 사람들 조차 그의 고고하고 깨끗한 인품에 탄복했다. 조선초기청백리박서생의청렴결백 했던 행적을 잘 대변해 주는 대목이 아닐수없다. 귀국후박서생은오랫동안이조에 몸담아있기도했으나그의인재선발 이 조금도 틀림이 없어 맑은 지절(志 節)은더욱돋보였다.이에세종은특 명으로 생전의 그를 청백리(淸白吏) 에 녹선함과 동시에 대사헌(大司憲) 에 임명했다. 대사헌에 임명된 박서 생은 오로지 곧은 일을 자임하여 어 떠한 일이나 간할 일이 있으면 극력 간해마지않았다. 그 후 병을 칭탁하고 벼슬에서 물 러난율정박서생은야은(冶隱)의옛 집으로돌아가한가로이여생을보내 려고 하자 조정에서는 너무 일찍 정 계에서은퇴함을애석히여긴나머지 끊임없이 녹(祿)을 내려주는가 하면 특별히 판안동부사(判安東府使)에 임명했다. 판안동부사가 되어 다시 안동지방을 다스리게 된 그는 워낙 인품이 뛰어나 가만히 있어도 잘 다 스려졌다고했다. 한편그의집안은대대로비안고을 에서 살았는데 여말 비안이 상주에 속하게 돼 상주 아전들의 횡포가 극 에 달하자 박서생이 조정에 건의해 독립현으로 되찾게 했고 그 후 자신 이 갖고 있던 땅을 희사해 향교를 짓 게 하는 등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았 다. 무본후생(務本厚生)·애민중농(愛 民重農)의 정치이념으로 삼은 선생 은 1428년 성균관 대사성 때 첫 조선 통신사정사로일본을다녀와서관개 (灌漑)를위한무인력수차제작과경 제 작물(作物) 수입 재배(栽培), 그 리고 화폐경제, 시장경제, 전납세제 (錢納稅制)와 통행세(通行稅)를 주 창하였고, 원활한 물류를 위한 교량 건설과 여관 목욕탕 설치 등 후생(厚 生)을 위한 방안을 상주(上奏)하였 다.이 모든 제안은 근대에 이르러 거 의가 실현되었으니 탁견(卓見)이 아 닐 수 없다. 한편 의성 낙동강 낙단보 인근에 위치한 ‘박서생 청년통신사공원’에 는 지난해부터 ‘율정호’ 운항과 각종 레저시설과선생이개발한수차등이 전시되어관광명소로떠오르고있다. 율정박서생소재뮤지컬븮박서생븯선보여 뱚뱚8월24일부터27일까지븣실학운동선구자이자조선최초통신사활약상 뱚뱚3D비디오프로젝션매핑기법주요명소실감있게그려갈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