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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1907년 국채보상운동은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국민들의 분노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인 1907년에 전개된 범국민 저항운동이었다. 1907년 1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같은해 3월 부산 초량객주를 중심으로 조직된 부산상무회(釜山港商務會)의 회원들에 의해 동래부 국채보상 일심회가 설립되었다. 이어, 같은 해 4월부터 7월까지 부산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부산 좌천리에서 조직된 감선의연부인회는 조석(朝夕)으로 반찬 값을 매일 3~4푼 감하여 감선(減膳) 모금하고자 결성된 부인회이다. 감선의연부인회(減膳義捐婦人會)는 취지서에 충군애국에는 남녀의 차가 없으므로 살림을 담당하는 자가 절용함으로써 국채보상이라는 민족적 대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국채보상운동의 여성참여는 여성들이 스스로 단체를 조직하고 구국항일운동을 벌인 최초의 사례이다. 이를 계기로 여성들은 다양한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고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