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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7월31일 월요일 5 (제199호) 관향조 종친회 동이 트는 새벽 5시 청년들의 손길은 분 주했고 예취기와 기계톱 소리는 새벽잠을 깨웠다. 밀양시 하남읍 귀명리 소재 경모 재 후원에 모셔진 대제학공을 비롯 정언 공, 참찬공 묘역은 어느새 잘 정돈된 집을 보는 듯 하였고, 구슬땀을 흘린 청년들 모 습에서는기쁨을보았다. 밀성박씨충헌공파 청년회는 매년 여름 벌초를겸한정기총회를개최하고있어지 난 9일 새벽 벌초와 오전10시 제21차 정기 총회를개최했다. 이날 총회 주요 안건은 임원개선보고, 홈페이지 개설 등으로 임원개선은 이사회 에서선출하고총회에서보고하게되어있 어4월 이사회에서 박명환현 회장을 유임 하고 박명선, 박필호 감사를 선출하여 이 날보고하고임원진에대한임명장이전달 되었다. 홈페이지구축및족보편찬에대한건은 2019년 정기총회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하 고 운영하자는 결의에 따라 지난해 20차 정기총회에서 족보편찬 사업과 연계하여 진행키로 하여 지난해 말 홈페이지 기본 폼을구축시연하고족보관련컨텐츠를활 성화하여소통의공간을마련키로한것이 다. 박명환회장은인사말을통해부족한사 람에게청년회장직을연임토록하여준것 은그동안의업적보다더잘하라는소명이 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하고 지지부진한 대동보편찬을 지켜보면서 홈 페이지를개설하여소통의공간을만들고, 보다 더 빠른 대동보 편찬에 도움을 주기 위한것이며성원을당부했다. 박진국 고문은 청년들이 구슬땀을 흘리 며벌초하는모습에고맙고감사하다고말 하고청년들이있어경모재가더욱더발전 하고있다며거듭고마움을표시했다. 박종우 밀성청년회장은 충헌공파청년 회의 벌초와 총회 소식을 듣고 박근식 총 무부회장과 참석하여 격려하면서 인사말 을통해밀성대군의후예로함께수호해야 할같은후손으로서상호교류와협력속에 더발전하는청년회와밀성재를만들어가 자며협력을강조했다. 이번 밀성청년회의 경모재 방문은 박종 우 회장의 취임일성으로 청년회의 외연확 장과회원배가운동으로각지파청년회를 순회 방문키로 하여 참판공파 경산 문중, 절 도 사 공 파 남 해 문중에 이 어 세 번 째이다. 한편 충 헌공은 密 城 大 君 (彦침)의 13世支孫 (시조 42 世 孫 ) 으 로 고려조 에 내부시승(內附侍丞)에 이르고 순충동 덕찬화공신 삼중대광(純忠同德贊化功臣 三重大匡)에 밀성군(密城君)으로 봉(封) 해졌으며, 추은(推恩)으로 금자광록대부 (金紫光祿大夫)의 은총이 더하여지고 시 호(諡號)는충헌(忠憲)이다. 이날 벌초를 한 묘소의 대제학공 휘 윤 문(允文)은 충헌공의 증손으로 밀주의 풍 각화산(현 청도군 풍각면 화산)본가에서 출생하여 충숙왕 원년(1314년)에 급제하 여 삼중대광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 學)에 이르고 밀성군 (密城君)에 봉해졌 다. 충목왕 원년(1345년) 문사(文士) 38명 을 선발하여 날짜를 바꾸어가며 시독(侍 讀) 할 때 공(公)은 기거랑(起居郞, 中書 門下省에 속한 관직의 하나. 임금의 일상 생활과주변에서일어나는일등을기록하 는 일을 맡아 보는 종5품의 관료)으로서 주참(注 핫 )하여 저술(著述)하였고, 특히 문장이 뛰어나 저술(著述)한 문적(文籍) 이 동문선(東文選)에 실렸고, 포은 정몽 주, 목은 이색과 더불어 도의(道義)로 사 귀었다.부인해양군부인광산김씨는첨의 정승으로 치사(致仕)하고 시호(諡號)가 문정(文正)인 태현(台鉉)의 따님이다. 부 도를 수행하고 시부모(媤父母)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효(友孝)하고 자손을 골고루 화애(和愛)하고 자비심(慈悲心)이 노비 (奴婢)에 까지 이르고 의복(衣服), 음식 (飮食)에까지 두루 돌아가게 하기를 법도 에맞게하니대광공(大匡)公은호례군자 (好禮君子)이고 부인(夫人)또한 예절(禮 節)의 여자교훈(女子敎訓)으로 칭송받았 다.슬하에아들6명을두니세칭육남대가 라불러지며크게번성하였다. 밀성박씨충헌공파청년회제21차정총 성료 박명환회장연임,이른새벽땀흘리며벌초숭조사상고취 박명환회장(右)이박지희수석부회 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기념촬 영을하고있다. 청년회에서이른새벽대제학공묘원을벌초하고있다.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는 지난 7 월7일 전반기 사업결산에대한감사를 실 시하여 감사 2분 중 경준감사는 입·출금 및 정기예금에 대한 회계감사를 집중하였 고상빈감사는건물관리와실무전반에대 해 감사를 한 후 점심식사를 끝내고 감사 강평에대한의견교환을하고하루일정의 감사를모두마치었다. 그리고7월19일에는감사,이사,연석회 의를개최했다. 이날 감사로부터 감사결과보고를 받고 집행부로부터는감사,지적및건의사항을 설명듣고전반기사업결산과종중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사업설명을 봉준회장으로 부터 직접 듣고 자료에 대한 질문과 답변 을 장시간 검토하며 의견 교환을 하고는 후반기 사업도 차질 없이 짜임새 있게 해 주기를 부탁한다며 장시간의 회의를 끝내 고 코로나19방역문제로 오찬은 생략하고 모두해산하였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2023년도전반기사업결산감사및이사회개 최 7월7일감사광경. 7월19일이사회광경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에 소재하는 죽산박씨 죽림재(竹林齋) 중수 준공식이 지난 9일 박동태 유사의 사회로 개최되었 다. 죽림재는 죽산박씨 대사헌공의 5대손 기오재(淇塢齋) 박희(朴僖) 선생을 비롯 한이하후손들의재사(齋舍)로문중의대 소사를 의논하는 곳이기도 하다.최초 185 9년에 입향지인 원당마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협소하고 퇴락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정확한 이건 시기는 전해지지 않으나 현재의 죽림재는 독립운동가 김동 진(金東鎭, 1867~1952) 선생이 1933년 계 유(癸酉)춘절(春節,봄이시작되는시기) 에 지은 죽림재이건기로 보아 유추할 수 있다. 대개 기문은 건물을 완공한 후 지어 서 각을하여거는데이로보아1932년가을에 중건한것같다. 이후수차례에걸쳐부분적수리를하였 으나 퇴락하여 지난 4월 기와작업을 시작 으로 기둥과 써까래 등의 떼를 벗기고 채 색하였으며,동재의내부를일신하고대문 의기둥을교체하는대대적인중수에이르 고이날준공식을갖게된것이다. 주손박동욱현종은환영사를통해선조 께서삶의터전을청도에정하여죽산박씨 문중의표상으로죽림재를지어문중의대 소사를 의논하여 왔으나 오래된 건물이라 손이 가야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어 엄두 를못내고있을때유사와임원진등의헌 신적인 노력으로 새롭게 단장이 되어 옛 건물의 멋을 살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 하고 앞으로 죽림재 보존을 위해 많은 관 심을 가져 줄 것을 당부하고 죽림재는 효 의실천과친목의장으로활용되었으면한 다고말했다. 이어 박희길 죽산박씨대종회 사무총장 은 죽산박씨는 비록 종원의 수는 적지만 이곳대사헌공문중의박안수중장을비롯 한훌륭한분들이곳곳에서명성을이어가 고있어자랑스럽다고말하고대종회는선 조 묘역을 잘 가꾸고 후진을 육성하는데 최선을다할것이라며성원을당부했다. 이어청도향교박희범수석장의,청도문 협 박영환 전회장, 청도문화원 박윤제 전 원장은충절의가문이라고소개하고그명 성이대대로이어질것이라며축하했다. 죽림재는 정면 4칸의 하당(下堂)이 있 고 팔작지붕으로 추녀가 길어 4개의 탱주 를세웠다. 좌우측에방이있고대청으로이루어졌 으며, 대문채(경지문,敬止門)에는 수납공 간1칸과옛날 가마를보관하던시렁이 있 는 방 한 칸이 있다. 기오재(淇塢齋) 박희(朴僖) 선생은 대 사헌공 휘 중의(仲宜)의 현손이다. 15세 때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거쳐 사마시 (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 진사에 이르 렀으며유고(遺稿)가있다. 공은 효행이 지극했는데 부친이 와병에 있는 중 하루는 개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 였을 때 갑자기 개고기를 구하기 어려워 기도하였는데 홀연 범이 개를 세 마리나 물고왔기에이를장만하여봉양했는데며 칠 뒤 부친의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이러 한효행이성종임금께도알려져효자정려 (孝子旌閭)를 받았으며 대동문헌록에도 기록되었다. 배위는 선산 부사를 지낸 노 윤창(盧允昌)의따님이다. 노윤창은 장연노씨(長淵盧氏) 입청도 조인데뒤를이을후손이끊어져오늘날까 지 기오재 후손들이 외손봉사(外孫奉祀) 하고있다. 공의 손자 소암(小庵) 박경(朴烱)은 장 사랑군자감참봉(將仕郞軍資監參奉)으로 임진왜란때재종형판서박엽(朴燁)과같 이창의하여충익공(忠翼公)정곤수(鄭崑 壽)와 죽기로 맹세하고 망우당 곽재우의 화왕산성 및 경주(慶州) 구강진(鷗江津)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증직이 가 선대부(嘉善大夫)병조판서(兵曹判書)이 다. 청도의죽산박씨는1400년대중엽단종 복위운동이일어났을당시성삼문과인척 이었던 박원지(朴元智)가 가솔을 이끌고 홍성에서 합천군 삼가로 피신하여 생활하 였다.이후장남인박승이(朴承李)는홍성 으로 돌아갔지만, 차남인 박계이(朴繼李) 의아들박희(朴僖)는청도읍원정리원당 에 장가를 들면서 1510년(중종 5)에 택리 한것으로추측된다. 파조대사헌의휘는중의(仲宜),고려조 에 전객령(典客令) 판전객사사(判典客寺 事)를 지내고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 은길재,운곡원천석선생등의총애가남 달라려조충신이었으나조선초태종의수 차례에걸친구애로발탁되어대사헌에제 수되었으나 곧바로 사직하고 초야로 돌아 와 고려조에 충절을 다하지 못한 점이 걸 려 마침내 강호에 뜻을 품고 이 세상과 연 을끊고절의를지켰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전 일성왕릉 참봉 박완식, 오릉보존회 홍보이사 박영택, 박 권현 전 도의원, 청도문화원장 박윤제, 청 도향교 수석장의 박희범, 청도문협 박영 환, 서청도농협 박욱현 조합장, 청도 군민 신문 박기오, 숭덕전 박성부 사무국장, 청 도청년회 박재희 회장 외 임원진, 박희길 죽산박씨대종회 사무총장,박종우 밀성재 청년회장과임원진과지역유림과본손등 80여명이참석축하했으며,나팔박밀성청 년회 연예담당부회장이 흥을 돋우며 행사 를더욱빚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죽산박씨청도‘죽림재븯(竹林齋)중수 준공식 1932년 이건 후 부분적 보수, 기와 및 기둥 일부 교체 등 대대적인 중수, 효의 실천과 친목의 장 으로 거듭날 것 죽림재이건91년만에대대적인중수를마치고지난9일준공식을가진가운데박희길죽산박씨대종회사무 총장이인사말을하고있다. 박동욱주손 박동태유사 죽림재전경 죽림재 지경문 죽림재이건중건기,독립운동가김동진선생이1933 년초봄에지었다. 효 자 이 면 서 창평향교 향선 생으로 많은 인 재를 양성했던 고직당 박영철 선생의 문집 ‘고 직당집(孤直堂 集)’ 국역이 순 조롭게 진행된 가운데 국내 유 명학자들과 각 대학도서관 관 계자들이선생의글을보고감탄을자아내 고 있다. 담양군청에서 후원하고 창평향교(전교 박문수) 주관으로 한학자 기동원 선생이 번역을 맡아 금년 말 국역으로 우리에게 선보일전망이다. 고직당집은 광해조에 목숨을 걸고 만언 소를 올린 박영철 선생과 삼종제 무은공 박세중 내금위장, 유자로 유명한 현손 행 암공박문오선생의유집(遺集)을모아19 55년후손박인근(仁根).박규찬(奎燦),박 희장(熙章),박희준(熙準)등후손들이편 찬했다. 고직당공은 1566년(명종 병인)에 태어 나 1647년(인조 정묘)에 서세(逝世)하였 는데 仁祖2年 甲子1624년에 진사가 되었 고 1633년 문과에 올라 벼슬은 병조좌랑 승문원교검과 통정대부승정원승지 겸 동 지중추부사 영춘현감을 역임하였으며 효 성과우애가남달라노모를즐겁게해드리 기 위해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보아급제하였고,병자호란이일어나자아 침에는 도연명의 율리(栗里)국화를 삼켰 고 저녁에는 백이숙제의 수양산 고사리를 먹었다는싯구를남겼다. 임금을 섬길 때는 진언(進言)하는 충성 (忠誠)이 있었는데 종묘(宗廟) 제례(祭 禮)와 위차(位次)에 대하여, 광해가 계모 인 인목대비를 폐위하는데 항거하는 일, 당시언론이임금의비리를막아주려한다 는 것, 종묘사직을 위하여 큰 아들을 군왕 으로 세워야 한다는 등의 만언소를 네 차 례나 올렸다. 향리에 돌아와 기옹 정홍명, 명곡 오희도와 도의지교로 지내면서 창평 향교에조수죽헌선생과협력하여서탁(書 )을마련하였는가하면진사답(進士畓) 300여두락(三百餘斗落)으로 후진교육에 면려(勉勵)하였기에 세상 사람들은 충효 학(忠孝學)을 겸한 청결(淸潔)선생 또는 창평향선생(昌平鄕先生)이라 칭송하고 있다. 삼종제 무은공 박세중 선생은 광해10년 (1618년)戊午年 23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인조6년(1628년) 무진년 6월25일 어모장 군행훈련원부정,등주요관직을걸쳐인 조 13년(1635년)乙亥年 12월 25일 가선대 부행호분위부사맹겸 내금위장을 역임하 였다.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시 왕명을 받아 승지 최온과 같이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상경하니 주화파(主和派)들의 건 의로 강화(講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 곡하며 시를 짓기를 偸生非是 男兒事(투 생비시 남아사-억지로 살고자하는것이 사내가 할 일이 아니다) 愧恨不從 三學士 (괴한부종 삼학사-삼학사를 따라죽지 아 니함이 부끄럽구나)하시었다.(삼학사는 : 尹集·吳達濟·洪翼漢 병자호란시 순절한 자). 행암공박문오선생은뛰어난학문과효 행으로 지역 유림의 칭송을 받았으며 그 기록이창평향교지에전한다. 한편 고직당집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 대,전남대,조선대 등국내 유명대학도서 관에소장되어있다. 창평향선생고직당박영철선생문집국 역 국내유명 학자들문장에감탄븣창평향교 차자 춘영은 무후(无后)이고 셋째 재영 (載榮)의 字는 여중(汝重) 호는 만오(晩 寤), 1836년에 태어나 관산읍 학다리에 분 가하여살다가1879년록봉아래안태골이 있어 후손이 번창 할 자리라 하여 새 터를 잡아녹동(鹿洞)으로처음이주했다.정원 (政院,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여러 가지 사항들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아보 던 관아)에 인(因)하여 충훈부 장사랑 도 사를 제수받았고, 유집(須知一簾)이 있으 며. 유학자 권태두 등과 함께 연명으로 우 암 송시열, 송준길을 문묘에 배향해야 한 다는상소를올리기도하였다. 만오공의 장자 희태(熙泰)의 초휘는 승 진(承鎭) 字는 대래(大來), 호는 신문(晨 門)으로 1857년 태어났다.1886년 병술(丙 戌)에 무과에 올라 효역부위 수문장에 이 르다. 일찍이 아버지의 명을 따라 중암 김 평묵(1819-1891)선생을 지도 적소(謫所, 유배지)를 찾아 배알하여 수학하고 영향 (影響)을 받아 녹양사라는 서당을 만들어 후학을 계도 하였으며, 부자의 교첩(敎牒) 이 정숙재에 보관하여 전해지고. 위계철, 문규태와 함께 읍지를 편찬하였다. 공의 아들 민교(敏敎)는 가훈을 이어받아 효우 (孝友)하고 종친간 돈목(敦睦)으로 집안 을 세우는데 근본으로 삼았으며, 손자 종 화(鍾和)는 치산치수 등 지역개발에 사재 를바쳐산림녹화를이루었으며,국고사업 으로 진행중인 저수지 축조공사가 중단되 어 논 12두락을 팔아 대신 공사를 마무리 하여 수리안전답으로 바꾸어 지역발전에 공이 지대하여 몽리(蒙利)주민들이 공적 비를세워칭송하고있다. 증손자 천수(天洙)의 호는 수당(守堂) 으로지역개발에공이있어내무부장관표 창을받았다. 그리고 현손 철환(哲渙)은 농협발전 및 농민봉사로 농협중앙회장 공적상을 수상 받고,지난3월제3회전국동시조합장선거 (농협·수협·산림조합)에서 장흥군 용산 농협조합장으로당선농 촌발전을위해고 군분투 하고 있으며, 종중 총무를 맡아 재 종숙 진수(珍洙, 부회장) 현종과 함께 종 중의발전을이루고있다. 만오공의 셋째 희원(熙元)의 초휘는 홍 석(弘錫) 자는 자선(子善), 호는 녹문(鹿 門) 또는 동산(東山)으로 사복재 송진봉 에게수학하고스승과함께중암김평묵의 유배지신안지도를찾아가가르침을받았 다. 송사 기우만, 성재 유중교, 면우 곽종 석, 대계 이승희를 비롯한 기호·영남지방 사림과 활발한 교유가 있었다. 븮중암선생 별집븯(重菴先生別集)븡븮학남집븯(鶴南集)븡 븮사복재집븯(思復齋集)발간을주도하였다. 문집으로 필사본 븮동산미정고븯(東山未定 稿)20권이전한다.특히밀양창녕등의본 가(本家)와멀리떨어져외로이살고있는 장흥의 종중이 대종중의역사에 불참하면 서 자칫 소외될 수 있었으나 경상도 종중 과 자주 왕래하며 소통하면서 족보편찬하 는데기여하여지역학자들의문집에실려 전해진다. 4면에서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