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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3년 7월 31일 (음 6월 14일) 월요일(신라기원 2080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199호 12면(월간)뱚 숭덕전제례가지난달29일경상북도 무형문화재보유자인정을위해도무형 문화재위원회심의에앞서그내용을널 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븮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보전 및 지원에 관한 조례븯 제27 조규정에의거도보에예고되었다. 숭덕전 제례는 조선시대 국조오례의 향역대시조항목에기록되어있는시조 묘제사로현재는 오릉보존회에서주관 하여실연하고있다. 국가제사로 봉행될 때의 전향례는 중 단되었으나, 홀기에 준하여 그대로 시 행중에있으며1차조사와비교시숭덕 전 제례의 대한 원형과 변화에 대한 정 리와함께제사에대한이해도가상당히 증진되었으며, 제례복은 조선말의 제복으로 정제 되었고 초헌관을 경주부윤으로 비정하여 종2품의 관품에 맞추어 헌관들의 제복이 정제되는 복장이 일정기준에따랐다.또한제례제수에대해서도고 문서를 기반으로 ‘숭덕전사’를 발간하여 제물 목록 과준비과정,홀기,축문등봉행과관련된사안들을 기록화하여제례봉행에최선을다하고있다.하지 만 더 많은 참례자들이 숭덕전 제례에 대한 이해도 확산이 필요 및 제수를 준비하는 분들의 경험과 지 혜를 기록화 하여 전승 보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전반적으로참례자들의제례에대한이해 도확산및의복의정제화,그리고제례에대한각종 기록화를 통한 전승체계 등 여러모로 관리븡감독에 많은신경을쓰고있으며,아직은일부미흡한점은 있으나 조선시대의 유교 제례를 계승한 소중한 우 리무형유산임을감안할때그가치는매우큰것으 로 이번 인븡지정 대상 선정 심의는 가결한다. 라고 인정예고의사유를밝혔다. 한편 경희대 한형주 교수는 수년전 숭덕전의 제 례에 관한 학술발표에서 ‘조선시대 숭덕전의 제례 의식’주제발표맺음말을통해다음과같이요약보 고해인용해본다. 조선 태종 14년(1414)에 단군, 기자, 고려시조에 게제사하는의주를상진하였는데,그제사의등급 을중사로삼았다. 前代를본받고자하는의식이사전의정비과정에 서이들을중사에편입시킨것이다.그런데이때삼 국의 시조는 그 의식의 과정 속에 제대로 편입되지 않았다.고구려,백제,신라의시조가편입되지않은 반면에고려시대의경우시조뿐아니라혜왕,현왕, 충경왕, 충열왕 등 4위의 왕에게 대해서도 사전에 등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세종대 중반 제 위전을 각각 3결씩 이들 삼국시조에게 설정했거나 지리지의 대상에 포함시켰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 며,세조가 고구려의 시조에게 제사지내는 등 조처 를취했던것과는다른모습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븮세종실록븯 오례에는 신라 시조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븮국조오례의븯 길례의식 에는분명하게‘신라시조박혁거세’를포함하는‘역 대시조’였다. 이러한 과정은 경종대에 이르러 바뀌게 되었다. 경종은경상감사조태억의상소를바탕으로신라의 시조묘를숭덕(崇德)이라는묘호로정하였고,예관 을보내치제하도록명하였다. 뒤이은 영조는 그 제사를 활발하게 만들었는데, 이종성(李宗城)이 좋은 여건을 만들었다. 영조는 박필정(朴弼正)과 박문수(朴文秀)의 숭덕전에 대 한상소를받으면서아예숭덕전에대한명칭을‘신 라시조왕’으로 하였고, 숭덕전에 설치한 전감(殿 監)의연한으로그관원을승진시키며,승지를보내 신라시조묘에대하여제사를드리게한것이다. 이러한조처는기본적으로중국에서역대제왕묘 (帝王廟)에 대한 존숭을 본받은 것으로 전조의 충 신이말세를경계한내용을본받아시행한것이다. 한편 영조의 숭덕전 고사를 본받으면서 정조는 다름대로의 방향을 세워서 치제하였다. 그는 당시 전라도를 암행하고 있던 이만수(李晩秀)에게 숭덕 전에 대한 제사를 드리도록 명하면서,아울러 제문 을 본인이 쓰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게다가 경순왕 의 제사를 신라 시조와 구분하여 立春과 立秋가 아 닌 2월과 8월에 시행하는 것과 숭덕전에서 8변,8두 의 제기를 쓰는 반면 경순왕은 7변, 7두를 쓰는 등 차이를 두는 것은 양자의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러한 차별을 넘어 자신이 직접 편액을 쓰겠다는 것을보여주는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고종 대에 들어와 좀 더 발전되었 다. 고종대에는 정조대 이후 수십년 동안 숭덕전에 대하여 중앙정부가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을 만회하 듯이 재위 7~8년간 그 무너진 공사를 재차 수리븡보 완하였다.그리고나머지관련사항,즉이전단계에 언급되었던숭덕전관리들의승진규정을다시살펴 보고서 재조정하였다. 이는 신라 시조의 3중성, 즉 박혁거세, 미추왕, 탈해왕 등 3인의 시조에 대하여 각각 치제를 하는 등의 조처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 이다. ※ 국조오례의 향 역대시조 - 고조선의 단군븡기 자, 신라의 박혁거세, 고구려의 주몽, 백제의 온건, 고려의왕건으로기록되어있고신라의석씨와김씨 왕계와가야의김수로는포함되지않음 숭덕전제향경북무형문화재지정 뱚뱚뱚뱚뱚뱚국조오례의‘향역대시조’편에전해져븣 뱚뱚뱚뱚뱚뱚소중한우리무형유산임을감안할때그가치는매우커 숭덕전제향광경. 신라의 왕자 미사흔을 왜에서 탈출시킨 후 목도 (木島-日本 九州지방)에 유배되었다가 불태워 죽 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계림의 신하임을 굽히지 않았던관설당박제상선생의추모제향이순국비가 있는대마도사고미나토현지에서지난4일관설당 공의후예영해,경주,면천박씨후손21명과신라오 릉보존회 박낙규 총재 등이 참례한 가운데 박봉영 현종의 집례로 박성수 영해박씨대종회장, 박낙규 오릉보존회 총재, 박경석 면천박씨대종회장이 각 각 헌작하고 박노인 축관의 독축으로 엄숙 봉행되 었다. 눌지왕(訥祗王)이 즉위하여 아우 복호는 고구려 에 미사흔은 일본에 억류되어 있어 슬픔으로 지내 던 중 신하를 보내어 귀환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에 관설당공이 고구려로 가 서 뷺한 뿌리의 후예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 습니까?뷻라는 한마디로 복호를 데려왔다. 그리고 다시미사흔을구하기위해서왜국으로떠나그해7 월에 그곳에 도착, 뷺신라왕이 나의 부모를 죽이고, 나를해치려하므로도망쳐왔소뷻하고망명한것으 로가장했다.왜왕은그말을곧이듣고장차신라를 칠 때 미사흔과 그를 앞잡이로 삼으려는 속셈을 품 게되었다.왜왕으로부터어느정도신임을받게되 자 그는 자주 미사흔을 데리고 바다에 나가 뱃놀이 를하면서탈출할기회를엿보았다.그러던어느날 지척을분간할수없도록안개가끼자그는바로이 때다 하고 미사흔을 몰래 신라로 떠나보냈다. 미사 흔을떠나보내고숙소로돌아온공(公)은감시하는 왜인에게뷺왕제는몸이피곤해서주무시고계시오뷻 하며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발각되어 왜왕 앞에 묶 여 나가 문초를 받게 되었다.뷺나의 신하가 되면 모 든것을용서하겠다뷻는왜왕에게뷺나는계림(鷄林) 의신하이다.나는계림의개나돼지가될망정왜국 의신하는되지않을것이며,계림의모진종아리는 맞을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을 것이다뷻하며 굴복하지 않았 다. 발바닥을 벗겨 갈대밭을 끌 고 다 녀 도 뷺나는 계림의 신하다뷻 하며 굴복하지 않고 불에 달군 철판 위로끌고다녀도끝 내 굴복하지 아니하 자왜왕은그를목도 (木島)로 유배시켰 다가마침내불에태 워죽이고말았다. 이후 일본인들 사 이에서도 그의 충절 을기리기위해사우 (유방원)을 건립하 여 향(香)을 올렸다 는것이구전으로전 해지고, 대마도에는 순국비가세워졌다. 대마도의 순국비는 1977년 한국학자 이종기(李 鍾埼)씨가 목도에서 순국하신 관설당 공(公)의 조 사 자료를 일본 세계일보에 20회에 걸쳐 연재를 하 였고, 이후 1987년에 사설평론가 이규태 씨가 목도 에 관설당순국비를 건립하자고 칼럼에 제시하였 고,이에 부응하여 일본 측에서는 당해 대마도역사 학자 나가도메 히사에(永留久惠)씨의 주도하에 있 는 대마순국선열현창회(大馬殉國先烈顯彰會)에 서 대마도에 1988년 순국비(朴堤上殉國之碑)를 건 립하였다. 순국비의 전면에는 신라국사박제상(모마이질 지)순국지비(新羅國使朴堤上(毛麻利叱智)殉國之 碑)라 쓰였고 뒷면에는 나가도메 히사에(永留久 惠)씨를비롯한추진위원명단이적혀있다. 박제상(朴堤上)선생의 또 다른 이름은 모말(毛 末)이다. 븮일본서기븯 권9 신공황후(神功皇后) 섭정 전기(攝政前紀)5년3월조에서는모마리질지(毛麻 利叱智)라고기록하고있고,이같은이름과선생의 충절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박제상전, 븮삼국 유사븯,븮일본서기븯등에나온다. 그러나 대마도 순국비 옆에 세워진 안내문은 왜 곡된 부분이 있어 양국의 역사관이 명확히 보인다. 순국비의 안내문에 명시되어 있는 문구에 대한 한 국의 역사(삼국사기,삼국유사)에 기초한 문제점은 「친선을위해미사흔을보낸게아니라볼모였으며, 한국 의역사에서는박제상공이목도로끌려가전향 을 요구당하며 달콤한 제안과 잔인한 고문을 당하 고불에타죽었다고나와있고,일본의역사서(일본 사기)는 대마도에서 일본장수 습진언(襲津彦)이 속은것을알고불태워죽였다고나와있다. 한편 이날 제향직후 장소를 히타카츠항 인근의 식당(토기세끼)으로옮겨준비한오찬을가졌으며, 이자리에서박성수회장은관설당의후예영해,면 천,경주박씨 분들이 함께한 것은 처음이라며 할아 버지께서도모처럼흡족하였을것이라고말하고함 께해준 박낙규 총재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에 박낙규 총재는 신라오릉보존회 차기 총재는 박성수회장이라며관설당공의후예여러분의성원 을당부했다. 추원보본의길은멀고도멀었다코로나19로인해 2019년 이후 3년 만에 봉행된 제례에 참례키 위해 전남진도와강진에서출발함안에서1박후부산여 객선터미널에서 조우하여 대마도를 찾은 종온, 성 열 현종은 갖은 고초에도 충절을 지킨 선조의 높은 정신을 후대에 까지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하 였으며,제례도중 찾아온 큰 새(매과 추정)한 마리 가 순국비 주변 상공을 다섯 바뀌 돌며 참례자들이 자리를 뜰 때까지 함께하여 참례자들은 매년 한 번 도 거르지 않고 찾아준 새는 아마도 할아버지의 환 생조가아닌가싶다며반기기도하였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관설당박제상선생추모제향가 져 뱚뱚뱚뱚뱚뱚뱚대마도순국비영해·면천·경주박씨후손21명 참례 뱚뱚뱚뱚뱚뱚 박낙규총재아헌관헌작,신라오릉보존회차기총재는박성수 회장뷺본손성원당부뷻 삼헌관이헌작하고있다.왼쪽부터박성수초헌관,박낙규아헌 관,박경석종헌관順 순국비, 관설당공의 휘자를 우리 말과일본어로병행기록했다. 안내문,왜곡된부분이있어양국의역사 관이명확히보인다. 제례 시간에날아든새한마리를참례한성손들은븮환생조븯라 여기며반긴다 유적탐방을 통해 숭조심을 고취하고 더 나아가 선현의 유지를 더듬으며 자기계발 을이루고종원간화합과돈목을함께이루 어 더 발전하는 청년회를 지향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2023 유적탐방은 30도를 웃도는 혹서(酷暑)를 이기며 지난 1일 전남 장흥 과보성지역에서실시되었다. 경남 밀양에서 출발하는 1호차와 경북 경산에서 출발한 2호차로 나누어 탑승한 탐방단은 섬진강 휴게소에서 조우하여 오 전10시40분전남장흥군장흥읍사안리의 세덕사에 도착 박태홍 도유사를 비롯한 강 진문화원장종민,강진유족회장진규,영암 군 종친회장 진석, 영암 총무이사 형순, 영 암 재무이사 완수, 세덕사 이사 상진, 세덕 사재무이사수정현종등이바쁜농사철과 장마가겹쳐있음에도아침일찍나와기다 리다탐방단을반갑게맞이했다. 태홍 도유사는 이 자리에서 멀리 밀성재 에서이곳먼장흥까지와주어대단히감사 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세덕사에 많은 관심 을가져달라고당부했다.이어박종민강진 문화원장이 세덕사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 고도유사의집례로주벽에종우청년회장, 서벽에 영남 절도사공파 남해청년회장,동 벽에 영진 함양군청년회장이 분헌관으로 나서 분향하고 준비한 제주를 헌작 후 전 탐방객이 배례를 올리면서 세덕사 참배를 마쳤다. ▶세덕사관련6-7면 이어 장흥군 용산면 녹원리 녹동마을의 전객령공후 부사공파 집성촌을 찾아 선영 에 참배하고 입향약사에 대해 철환 용산농 협조합장으로부터 자세하게 설명 듣고 준 비된 다과를 함께하며 종친회 관심사에 대 해의견을나눈가운데철환조합장은이곳 장흥에서도 밀성재 행사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고 기 회가 주어진다면 꼭 밀성재를 찾아 함께하 겠다고말했다.이에종 우청년회장은전객 령공파 후손들이 장흥에 세거하게 된 사실 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환대 에감사함을함께전했다. 부사공파 장흥문중에서는 진수 부회장 과 박씨종친회 용산면 종친회장이 함께하 였으며,장흥의특산품으로구성된선물셋 트를 회원모두에게 전해주어 잠시 더위를 잊는애종을함께나누었다.▶관련기사4면 이어 장흥 정남진전망대횟집으로 장소 를옮겨준비된오찬을함께한가운데횟집 사장이자 세덕사 재무이사를 맡고 있는 수 정 현종이 바라보이는 완도 금당도, 고흥 녹동과 금산면 등을 소개하며 남해안 섬들의 아름다움을 만 끽했다. 오후일정으로 장평면 두봉 산진길26-13,효(孝)수련원을 찾았다. 효 수련원은 코로나19 이전 정신문화 수도인 안동지역 유림을 비 롯 전국 청소년들의 체험공간으로 활동되 면서 유명해졌다.원장인 박성기 죽천박광 전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옛날 부모가 돌아가시면 묘역에서 시묘를 하듯 선조의 묘소를 이장하여 안치하고 묘역아래 집을 짓고 항상 조상을 숭모하며 효를 생각해보 게 하도록 효수련원을 건립했다고 말하고 청년들을환영했다. 효수련원은 넓은 공간에 산책길이 조성 되었으며,수련원과숙식을함께할수있는 공간이 있어 가족단위 또는 종친단체의 합 숙수련이가능하다. ▶관련기사8면 박성기 이사장의 안내를 받아 찾은 용산 서원은전남보성출신의죽천박광전(竹川 朴光前, 1526~1597)을 추모제향하고, 후학 들의 면학을 조성하는 강학의 공간으로 16 07년창건되었으나1868년 훼철되었다가2 011년 복원사업이 진행되어 2016년 12월에 준공하게되었다. ▶관련기사2면 박형기 전 대종회장과 형철 현 대종회장 (前교장)을비롯임원진이대거함께한자 리에서형기전회장은용산서원내력을자 세히 소개하고 청년들의 숭조심에 감사와 함께치하를드린다고말했다.사우경덕사 를찾아종우회장이대표로분향과헌작하 는 등 참배를 마치고 경내의 보성의병기념 관을 찾아 의병들의 활약상을 미디어를 통 해 관람하는 등 호국정신을 함양하는 시간 을가졌다. 한편 밀성(밀양)박씨 전국청년회 선조 유적탐방은 2001년 창립이후 2003년부터 한해도거르지않고전국에산재해있는종 중의 유적지를 고루 탐방 참배 해 왔다. 특 히 코로나19의 엄중함에 탐방을 지속해와 타종중의모범이되어왔다. 이번탐방에도대종회진국명예회장(부 산향교재단 이사장)과 영호 총무이사, 두 완 전 밀직부원군파대종회장 등 원로분이 함께하며 청년들을 지도하였고,경산 진량 의속초문중,함양군청년회,절도사공파남 해청년회 회원들이 처음 참석하여 탐방의 의미와 숭조 애종을 함께 체험하는 기회를 가져 추후 지역에서 이 같은 행사를 통해 청년회발전을이룰것이라고말했다. 이번행사에이처럼지역별청년회가참 여한배경에는종우회장의취임일성으로 청년회 외연확장을 위하고 회원배가운동 을 위해 각 종파를 순회 방문하여 유대를 강화한다고 밝힌 이래 경산 참판공파 종중 과 남해 문중 등을 순회하 면서 청년 들의 동참을이끌어내이번탐방은어느때보다 뜻 깊고 의미가 깊은 행사로 기억될 것 같 다. 밀성(밀양)박씨전국청년회선조유 적탐방성료 장흥세덕사·집성촌녹동마을·효수련원·용산서원등븣숭조심고취븡애종및호국정신 함양의시간가져 박종우 회장(좌)이박동규 부회장의 도움을 받아헌 작하고있다. 본보에서는 성손여러분에게 보다 더 많은 정보제공과 성원에 보답하 기위해금번8월호부터전면컬러인쇄를하게되었습니다.더많은성 손이구독하고함께만들어가길앙망합니다. 社 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