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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집 나이 세 살짜리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젖을 물린 것이다. 젖은 나오지 않았지만 졸 지에 아버지를 잃은 애기는 할아버지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그 모습에 김경예 는 눈물이 핑 돌았다. 3개월 전 오빠가 총에 맞은 날이 또 떠올랐다. 총에 맞은 오빠 김 재수를 아버지 김영두와 이웃집 아저씨가 업어와 마루에 눕혔다. 오빠의 배에서는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김경예는 마루 닦는 걸레로 오빠의 가슴과 배를 닦았다. 걸레는 금세 피로 얼룩졌다. 냇가에 가 피 묻은 걸레를 빠는데, 냇 물에 오빠의 얼굴이 비치는 듯했다. 김경예는 울음이 터졌다. 김경예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 갔는데 특히 걸레로 오빠의 몸을 닦을 때 났던 피 냄새는 무척 오래 갔다. 나중에 시집을 간 그녀가 마루를 닦는데 갑자기 피 냄새가 '확' 났다. 그만 김경예는 정신줄을 놓았다.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오빠 김재수가 학살된 지 얼마 후였다. 올케 언니가 개가를 했다. 7세, 5세, 3세가 된 조카가 3명이나 있었다. 김영두는 며느리에게 "그래 가거라. 다만 경찰한테만은 시집가지 말 거라"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며느리는 개가했다. 7세 아들은 해남고아원에 맡겨졌고, 둘째 아들과 막내딸은 김영두의 차남이 맡아 키웠다. 둘째 자식에게 손녀를 맡기기 전 김영두는 손녀가 칭얼대면 나오지 않는 자신의 젖을 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