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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중앙탑은 현존하는 신라의 석탑으로는 12.86m로 규모가 가장 크고 높다. 거기에다 탑 이 평지가 아닌 높은 기단에 서 있어 그 웅장함은 더하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의 수도인 경주 다음가 는 소경(小京)인 데다가 영토의 중앙에 해당해 국가의 위세를 대내외에 알리기 좋은 지리 적 조건을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국토의 중심지로 여겨왔다. 고구려는 나라의 중앙이라며 ‘국원성 (國原城)’이라고 했고, 신라는 국토 중앙에 있는 서울이라는 뜻으로 ‘중원경(中原京)’으로 불렀다. 이처럼 충주는 국토의 중심 고을 의미가 있고 중앙탑은 국토의 중앙이라는 상징적 의 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중앙탑의 공식 명칭은 ‘충주 가금면 탑평리 7층 석탑(국보 제6호)’이다. 이는 문화재로 지정할 때 탑이 위치한 곳의 행정지명과 탑의 층수에 의한 것으로 사람들이 언 제부터 중앙탑이라고 쓰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라의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이 통일신라 영토의 중앙 부위를 설정하려 고 남북 국경에서 건장한 남자를 동시에 출발시켜 만난 이곳에 탑을 세웠다고 하는 전설 이 ‘중앙탑’으로 불리게 됐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작성된 탑의 수리에 관한 문서를 보면 모두 ‘중앙탑’이란 이름으 로 이 문서 끝에 ‘구비로 전함에 의하면 중앙탑의 명칭은 조선의 중앙지라고 전설하였다 는데 유함’이라고 해 중앙탑의 건탑 유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중앙탑은 삼국시대부터 국원(國原) 또는 중원(中原)이라 칭한 충주에 위치해 지역적으 로 중심 고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탑이다. 중앙탑은 현재까지 건립된 시기와 그 의미가 확실하지 않아 다양한 견해가 있는 가운 데, 9세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지방 세력을 누르고 반신라적 민심을 달래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