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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3년 6월 30일 (음 5월 13일) 금요일(신라기원 2080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198호 12면(월간)뱚 경상북도는 지난 12일 숭덕전 제례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마지막 회의를 갖고 조만간 그 결과를 공고할 예정 이다. 수년에 걸친 고증과 조명 속에 엄격한 심사를 걸쳐 진 행된 문화재지정은 지난 19일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긍정 적답변이있어기대해볼만하다. 김해 숭선전에서 1878년 전(前)김해부사 대호군(大護 軍)성재(性齋)허전(許傳)이 수로왕의 납릉(納陵)을 관 리하고제향을받듦에신라시조대왕(휘赫居世),기자(箕 子),동명성왕(東明聖王),왕건(王建),태조 등 다른 건국 주의예와동일하게해줄것을상소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경주 숭덕전의 예에 따라 행하라는 윤허가경상도관찰사를통해전달된바있으며,숭선전의 제례는 1990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시도무형문화재 제11 호지정되었다.그러나숭덕전의예에따라봉행되는숭선 전의 제례에 비해 숭덕전의 제례가 늦게나마 무형문화재 지정을앞두고있어전국성손들의숙원이조만간해결될 예정이다. 신라 시조묘인 숭덕전의 제향은 영정조대에 정비되었 다. 특히 숭덕전의 제향은 다른 시조묘의 경우와 마찬가지 로2월과8월상순의좋은날을길일로선택하여거행되었 다. 특히 정조대에는 매년 각신이 봄과 가을에 향과 축문 과 예물을 가지고 내려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 항례가 되 었다. 이와 같은 숭덕전의 제향 시 사용된 제기와 제수에 대 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정조 16년(1792)의 기록이다.당시각신이만수(李晩秀)가전국각지의시조 묘와 왕릉에 제사를 지낼 때의 별단을 통해 숭덕전 제향 때의 제물과 제기의 종별을 확인할 수 있다. 곧 숭덕전의 제물은 동지의 제사를 전례로 삼아 장만하는데, 벼[稻], 기장[梁],개암[榛],밤[栗],희생[牲],포[ ],김치[菹], 젓 갈[ ]따위였다. 이와 함께 제기는 제상 2개, 향상 1개, 촛대 2개,보와 궤 각각 2개,목두 6개,죽변 10개,작 6개이 며,술독이있고,술잔[尊]1개와국자1개이다.곧 숭덕전 의 제향은팔변(八 븅 ),팔두(八豆)의 제기를 사용하고있 었던것이다. 당시사용된제기중일부가2015년12월28일경상북도 의유형문화재제486호로지정되어관리되고있다. 숭덕전제례문화재지정위한 전문위원마지막회의가져 회의결과종합적고찰과판단후곧공고예정 숭덕전소장조선시대제기유물3종5점 보뚜껑‘萬曆己卯造’명문,1579년만들어졌다. 임진왜란 당시 광주에 의병도청 을 설치하고 의병 모집과 군수물자 조달 등에 힘쓴 회 재 박광옥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제 례가 지난 12일 광 주 서구 풍암동 소 재 벽진서원 의열 사에서 지역 유림 주관으로있었다. 코로나19바이러 스의 엔데믹(Ende mic, 풍토병)을 선 언함으로서 이날 제향에는 100여명 의 지역 유림들이 회재 선생의 음덕 을 기리기 위해 참 례한가운데오전1 0시 강당에서 개좌 를 열어 오집사를 제외한 내외집사를 분정하고 축관의 꼼꼼 한점검속에제물봉진례가시작되었다. 제물봉진에이어사축을한후제례에는 나천주(羅天柱)집례관의 창홀에 따라 고 재유(高在維) 전 광주광역시장, 문영수 (文永洙) 성균관유도회 전라남도회장, 정 영균(丁永均) 광주향교 모성회장 순으로 헌작하고 오현교(吳玹敎) 축관의 독축은 도심속 공간에서 울려퍼져 지역 주민들의 가슴속으로파고들었다. 제례 봉행 후에는 강평과 음복, 분포례 순으로 2시간여의 제례는 참여 제관의 정 성으로엄숙한분위기속에봉행되었다. 초헌관으로 헌작한 고재유 전 광주광역 시장(전 장흥고씨대종회장)은 선조 제봉 고경명장군과함께활약하였던회재선생 의영전(靈前)에헌작할수있어영광스럽 고 기뻤다고 말하고 회재 선생 사후 430년 이 지난 지금에도 선생의 유덕은 우리 모 두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며 지극한 애민정 신으로 전평재를 만들어 농사를 짓게 하 고, 회재로를 따라 기업과 학교 등이 들어 서며선생이추구한삶이그대로반영되고 있다며선생의유지를따라함께할것이라 고말했다. 아헌관으로 헌작한 문영수 전라남도유 도회장은 선생의 충정과 애민정신이 후세 에영원토록계승될수있도록노력하겠다 고 하였으며, 윤장현 원장은 훌륭한 지역 유지분들이 함께 해주어 감사드린다고 말 했다. 음성박씨 정승공파 박희진 회장은 올해 로 벽진서원이 사액을 받은지 342년이 되 었다고말하고선생의유지를받들어인재 양성과 함께 서원이 지역주민과 함께 할 수있도록문중에서는지원을아끼지않을 것이라며성원을당부했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1526년 1월 26일 광 주광역시서구매월동회산에서성균관사 예인곤(鯤)의아들로출생하였다.본관은 음성(陰城)이고 자는 경원(景瑗)이며 호 는회재(懷齋)이다. 44세에 학행(學行)으로 내시교관을 지 내고 49세에 운봉현감에 제수되었으며 별 시(別試)에 합격해 예조정랑 사헌부지평 과 성절사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영광군수밀양부사등을역임한후향리에 돌아와 개산송당(蓋山松堂)을 짓고 후진 양성에매진했다. 1592년선생이67세때임진왜란을당해 전국이 왜적에게 유린되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같은나라를구하기위해모집해 김천일과고경명에게출전케하여큰성과 를 올리게 하고 뒤에서 의병과 군량을 확 보하여그뒷바라지를도맡았다.광주목사 권율(權慄)이천여명의광주군사로이치 대첩을거두고,이어서전라순찰사가되어 만 여 명의 호남의병을 이끌고 북진할 때 군사와군량을공급했으며,대흥사의승장 처영(處英)을 함께 참여시켜 행주대첩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한 것도 선생 의역할이었다. 선생은 67세의 고령에도 나주목사에 취 임하여 국난을 극복하는데 전념하다가 병 환으로사임하고1593년 10월 26일에 별세 했다. 회재 선생의 삶은 애민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주민의 기근을 해소하기 위 해 개산방죽을 막아 농용수를 제공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며, 지역 의 문인들과 함께하면 예향광주의 발전적 문화 환경의 기반을 세웠으며, 광주향교 향약을 재정하는 등 지역주민의 순화에도 심혈을기울여앞장섰다. 한편 벽진서원은 2023년도 광주광역시 서구청 지원 ‘청소년 인성예절교육’과 ‘전 통생활다례’강좌가오는27일과29일까지 진행되고있으며,이어유교아카데미등의 강좌가진행된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회재박광옥선생추모제향봉행 벽진서원춘향이지난12일봉행된가운데참례한제관이함께하고있다.(사진앞줄오른쪽부터고재 유초헌관,문영수아헌관,정영군종헌관,나천주집례,오현교축관순) 벽진서원,선생의유덕으로많은혜택누려 제례에진설되는봉진에앞서점검하고있다.(봉진례) 제례후진설된제수를제관에게드리는분포례와함께 이날제향이마무리된다. 윤장현 원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박희진회장이강학의공 간으로 자리하도록 지원 을아끼지않을것이라고 인사한다. 우리사회에 조 선시대부터 조직 되어 이어온 계 (契)는 주로 학맥 이 같은 문인과 토 반 그리고 동반입 격자 등으로 구성 되어 수백 년을 이 어져 온다. 그러나 옹서간의 계는 드 물다. 장인과 두 사위 집안(삼옹서)의우 애가 600여년을 이 어오고 있어 화재 다. 지난달 29일 경 남 밀양시 부북면 대항2길 12-15 래 독재(來讀齋)에서 가진 강선계 제99차 정 기총회는 이를 반영하듯 장대같은 우중 (雨中)에도 불구하고 세 집안 후손 150여 명이재실과마당을가득메운체아산장씨 문중주관으로장신재총무의사회로국민 의례,선조에대한 의례,내빈소개및 회장 인사, 환영사, 축사, 업무 및 경과보고, 감 사보고, 결산보고, 의안심의 순으로 개최 되었다. 장환성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삼공(三 公)의 유덕을 빛내기 위해 우천에도 불구 하고많이참석해주시어감사드린다고말 하고 창계 한 지 99년을 지내오는 동안 선 인께서는그어려운환경에도불구하고조 금도 티끌에 물들지 않고 오늘에 이 빛나 고 아름다운 큰 꽃을 피워주신 선인의 노 고는 이루 형형할 수 없으며, 지금의 삼공 후예여러분도선인의노고를마음속깊이 생각하여한점의오점없이자라오는후손 에 더 큰 모란꽃을 전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00주년 기념행사에 심혈을 기울여삼공의지혜와덕행을만세에영원 히 빛내어 주실 것을 갈망하면서 인사에 갈음했다. 래독재 종회 장절재 종회장은 환영사를 통해그동안재사를정비하고화장실을현 대식으로개축하는등준비에소홀함이없 도록 하였으나 우중에 개최되어 불편함이 많을것이라사료되오나오늘하루즐겁게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하고 래독재는 누구 나 찾아와 글을 읽도록 하라는 선조의 유 훈에따른것이라며재사래독재를소개했 다. 아산장씨대종회장성환회장은600여성 상을이어오는동안아름다움을기리고돈 독한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 니다. 나무에 뿌리가 깊고 두터우면 가지 와잎이무성하고원천이청결하면내려가 는물길이맑고힘차게흘러간다는근원의 이치를새삼느끼게되어이는선대3공어 른들의 아름다움을 기리고 밝음과 어지심 의한역사라생각하며취지가후손만대에 전하고 이어지며 더욱 발전하길 기원한다 고말했다. 박일섭고문(전회장)은선대의뜻을강 선계에담아이어온후손들은선조의음덕 으로 3문의 무궁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코 로나로 인해 수년간 행사를 못하고 오늘 아산장씨 문중에서 총회를 열게 되어 뜻 깊고기쁘다고말하고강선계회원은숭조 와 애종 돈종 충효의 정신으로 위대한 선 조의 위업을 계승 발전 시켜 나가길 기원 한다며격려했다. 기념식에 이어 의안심의에서는 경과보 고와 감사보고에 이어 △100주년 기념 초 청강연 및 학술대회 개최 △선현 유적탐방 △강선계예탁방법변경△규약변경등을 상정처리했다. 이중 예탁 방법 변경은 연로한 어른들 연명으로 관리하다 보니 효율적으로 관리 가 어려워 규약 제18조(재정운영)중 ‘각 문중의 강선계 회장단 연명으로’를 ‘각 문 중의 강선계 회장이 지하는 자의 연명’으 로개정했다. 그리고 다음해 개최되는 100주년을 맞 아 강선계 100년사를 담은 계지를 발간키 로 하고 이를 위해 박경해 현종을 편집위 원장으로 추대하여 계지 서문, 규약, 행적 서술 및 장갈문 수록, 과방록, 3공과 문평 공,감무공,정부인 옥산정씨,대사헌공 배 위 묘표문, 3성씨 가계도, 3성씨 후손중에 현달한분의행적,충효열전,대과소과,학 자 문집, 임진, 정유, 정묘, 병자호란 등의 충의열사, 원종공신 녹권, 독립투사(서훈 된 분), 사당과 서원 누정, 재실 소개, 현대 인물(생존자 제외, 사회에 저명한분), 강 선계 공헌이 있는 뚜렷한 분을 수록하여 계지를 보는 후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준다는계획이다. 한편1923년김현주선생의글을인용하 여강선계를소개한다. [강선계는전(全)장(蔣)박(朴)3성씨(姓氏) 가 옛 정의(情誼)를 강구(講究)하여 새롭게 돈목(敦睦)할모임의이름이다. 판밀직사(判密直事) 전공 휘(全公諱) 의 룡(義龍)의청렴(淸廉)한명예(名譽)와곧은 절개(節介)는 백세에 드리워져 있고 동래 부사(東萊府事)장공휘(蔣公諱)흥부(興膚) 와 대사헌(大司憲) 박공 휘(朴公諱) 해(咳) 는 그의 사위이시다.청풍(淸風)은 쉼 없고 후세(後世)에 남긴 음덕(蔭德)은 끊이지 않 았으니 이 어찌 위대(偉大)하지 아니하랴 오직 저 경산천매(慶山川梅)는 곧 세 어른 이 평소(平素)거니시던 곳이다. 오백여년 (五百餘年)의 간격(間隔)이 막연(漠然)하여 다만산높고물맑은경치(景致)를보니그 럴 듯한 초목(草木)은 향기(香氣)를 머금었 고 고요한 산수의 경치는 옛 모양 변치 않 아 거의 비슷하니 앙모(仰慕)하고 의지(依 支)할곳이다.또세어른의무덤이모두같 은 고을에 있으니 묘소(墓所)의 무성(茂盛) 한 송추(松楸)는 이슬 맞고 서리 맞아 쓸쓸 하니무릇관계(關係)자손된자어찌구의 (舊誼)의 감회(感懷)두렵고 근심되지 아니 하리오 세대는 점점 멀어지고 후손(後孫) 마져 점차소원(疏遠)해지면 서로가 잊게 되어 강구(講究)가 불가할지니 이 어찌 두 렵지 않으리까 장(蔣) 박(朴) 첨현(僉賢)들 은각기(各其)곧금년묘사(墓祀)지낸자리 에서준엄(峻嚴)한발의(發議)로수계(修契) 를 논의(論議)하여 명명(命名)하기를 강선 (講先)이라하고일언(一言)으로서문(序文) 을 강(講)함에 내 곧 작술(作述)하다 아름답 도다 이제 이 말을 들어 논제(論題)로 삼노 라공융(孔融)과이부(李膚)의교의(交誼)를 후세(後世) 사람들은 반듯이 강구(講究)해 야 하고 소동파(蘇東坡)와 황산곡(黃山谷) 의 우의(友誼)또한 사기(史記)에 실여있으 니이어찌아득히오래되었다하여잊을수 있으랴하물며옛터에있었던한그루의은 행나무는해마다봄의아름다운빛을이전 의 상태와 같이 돌이키듯 즉 지금은 비록 쓰러졌다지만 이계(契)의 설립은 우연이 아닐지니이제묘소의전나무는다시소생 (蘇生)하리라가히점칠수있도다.] 강선계(講先契)제99차정기총회성 료 우중에도150여명 참석선조의높은뜻기려븣계지발간등100주년기념사업추 진 장환성회장 박일섭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