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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1597년 명·일 사이의 강화회담이 결렬되자, 본국으로 건너갔던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이순신은 적을 격멸할 기회가 다시 왔음을 기뻐하고 싸움에 만전을 기하였다. 그러나 원균의 모함과 왜 군의 모략으로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고니시[小西行長]의 부하이며 이중간첩인 요시라(要時羅)라는 자가 경상 우병사 김응서(金應瑞)에게 가토[加藤淸正]가 어느날 바다를 건너올 것이 니 수군을 시켜 이를 사로잡을 것을 은밀히 알려오자, 조정에서는 통제사 이순신에게 이를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은 이것이 적의 흉계인 줄 알면서도 부득이 출동하였으나, 가토는 이미 수일 전에 서생포(西生浦)에 들어온 뒤였다. 이때 마침 조정에서도 영의정 유성룡을 몰아내려는 자들이 있었다. 이순신은 유성룡이 전라좌수 사로 추천한 사람이라, 이를 구실로 먼저 모함당하게 되었다. 또, 그 중에서도 경상우수사 원균 같은 이는 한층 더 노골적인 불만을 가졌던 터라 이순신을 모함하는 소를 올리게 되었다. 상소를 받은 선조는 돌아가는 실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여 원균의 상소만을 믿고 크게 노하여, 이순신이 명령을 어기고 출전을 지연하였다는 죄를 들어 벌을 주 고 원균으로 하여금 그 직을 대신하게 하였다. 그러나 유성룡은 끝까지 “통제사의 적임자는 이순신밖에 없으며, 만일 한산도를 잃는 날이면 호남 지방 또한 지킬 수 없습니다.” 하고 간청하였 지만 정세판단에 어두운 선조가 그것을 받아들일 리 없었기에, 이순신을 잡아들이라는 명령만을 내렸다. 이때 이순신은 전선을 거느리고 가덕도 앞바다에 있었는데, 이러한 소식 을 듣고 바로 본영인 한산도로 돌아와 진중을 정리하고 원균에게 직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