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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3월31일 금요일 6 (제195호) 관향조 종친회 강원 횡성지역과 전북 완주 고산지역 토반(土班)으로 자리하고 있는 밀양박씨 사문진사공 후(后) 병조판서공파종친회 (회장 병섭)는 지난 3월 1일 횡성향교 웨 딩홀에서 제37차 정기총회를 갖고 결산보 고 및 사업계획안, 예산안 등을 상정처리 하고 박헌영(사직공 后, 한양대), 박재균 (교수공 后, 목원대), 박연주(이정공 后, 한국외대),박민재(이정공 后,고려대)학 생에게 장학증서와 100만원의 장학금을 각각전달했다. 1997년부터 주어진 장학금은 금년까지 94명의 학생에게 전달 되어 장학금을 받은 수혜자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여 장학금 환원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어 진정한 육영사업으로 자리메김하 고 있다. 그러나 예산의 고갈과 장학생 선발과정 등의 문제로 장 학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대두되면서 이날 종원들의 의 견을수렴하여다음이사회에서재논의키로했다. 감사보고를한박순제감사는코로나19로인해아무것도할수 없어감사할것이없었다며아쉬움을토로하고어떻게하면더잘 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보고 어떻게 하면 더자주만날수 있을 까연구해보면감사할따름이라며보고했다. 2023년 사업계획은 경주·밀양·김제 등 선조 제향 참례,장학사 업,종친회달력제작배포,청년회조직활성화및촉진지원,각종 회의등으로이에대한예산1천7칠십만원을편성했다. 매년나라의소중함을일깨워주기위해3.1독립만세운동기념 일을 총회일로 지정한 병조판서공파 종친회는 애국지사들의 숭 고한뜻을기리는종원들의나라사랑을엿볼수있다. 박병섭 회장은 회장으로 2000년 3월 추대와 함께 발발한 코로 나19로인해비대면회의가이어지면서이날처음종원들과상견 례를 갖게 된 가운데 인사말을 통해 정관에 명기된 숭조 화합 육 영이 있는데 숭조는 조상을 위하는 것이기에 말할 것도 없고,화 합은시대를반영해보면늙은부모를부양해야하느니말아야하 느니 하며 여론조사에서 극명하게 달리하고 결혼과 자녀의 출산 개념이 희박해져 아주 우려스러운 시대적 환경이 우리 종친회에 서도일어나지않을수없어우려스러운일이다.육영사업은단순 히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정도이고 현실적으로는 축하금 정도인데 우리종친회 예산 40%가 장학금 지급으로 신청자중 탈 락한학생도있어제도를개선해야하지않을까한다며취임이후 가진 소회를 밝히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화합하고 합심하 여번창해나갔으면한다고말했다. 이어 박영선 前 밀성박씨대종회장은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 우 리문중이 일치단결하고 화합하여 종친회가 오늘보다 더 많은 사 람들이참여하였으면좋겠고,어려운가운데장학사업을하고있 어500만원의기금을내놓겠다며육영사업에도매진하는종친회 가되었으면한다고말했다. 박전근 고문은 종친회는 종원들의 성의로 이루어지는 것 적극 적으로참여해달라고주문했다. 병조판서공파는 사문진사공 후 간의대부공 휘 인익의 후예로 목천현감을 지내고 손자 이정공(휘 열)의 귀(貴)로 병조판서에 추증된 휘 유(維)를 파조로하여 병조판서공파로 세계를 잇고 있 으며, 후손들은 강원도 횡성을 중심으로 원주, 전북 완주고산 등 지에집성촌을이룬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밀양박씨사문진사공后병조판서공파제37 차정총 장학금지급븣누적장학생94명 박병섭회장이박헌영학생을비롯한4명의학생에게장학금과장학증서를전달 하고있다.(사진박헌영학생) 박병섭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밀양박씨 해백공파중앙종친회(회장 성 율)2023정기총회가지난 7일오후1시 철 도공사 대전충남지역본부 5층 매화실에 서 재적 대의원 37명 중 21명이 참석 성원 을 이룬 가운데 △종무보고(총무이사 성 춘), △ 2022회계연도 감사보고(감사 영 학)를마치고,△1호의안2022년도세입세 출 결산안을 재무이사 상성 일가의 제안 설명으로 세입세출결산총액 1억8천3백40 만 3천8백4십3원의 원안 가결하고 기타토 의순으로진행되었다. 성율회장은회의에앞서인사말을통해 지난 3년은 지구촌을 강타한 전대미문의 악성 전염병으로 인하여1년에 두번 뿐인 총회를 개최하지 못하고 서면결의로 대체 하는 바람에 여러분들과 얼굴조차 대면할 수없었으나열선조님들의음덕과대의원 여러분들의 협조 덕분에 별 대과 없이 종 무를 수행했습니다만 우리 종친회의 근간 인회칙에의해당연히납부하게되어있는 회비를내지않고회직자이면필히참석해 야할회의나파조님의세일사에도참석하 지 않는 등 자신들이 당연히 해야 할 책무 를방기하는크나큰잘못을대수롭지않게 저지르면서도 회의에 나와서는 적반하장 으로허울좋은이론만을앞세워지엽적이 고 사소한 문제를 침소봉대해서 집요하게 지적하여 무보수로 봉사하는 집행부 임원 들의자존심에상처를주고사기를저하시 키는 일이 있는데 이는 마땅히 시정되고 타파되어야할악성구습이라고믿어의심 치 않는며 책임과 의무를 다해줄 것을 당 부했다. 해백공파는 규정공파 35지파에 속해 있 고 파조는 존성재공(휘 楣)의 6형제 중 셋 째인 휘 소영(召榮)으로 규정공 휘 현의 7 대손이다. 465년 (乙酉, 세조10)에 태어났 다. 字는 길보(吉甫), 계묘(癸卯, 1483)에 생원이 되고 을사(乙巳,1485)에 문과에 급 제했다.홍문관 응교,전한,직제학을 지냈 고,겸하여상대지제교와경연과춘추관에 서도 근무했다.연산군 갑자년(1504)에 정 치가 혼란할 때를 맞아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에게사약을전했던이세좌의죄 를 논하지 않았다 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충북진천으로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장악원정 으로 다시 조정으로 들어왔다. 이후로 승 문원 판의 절충장군 병조참의 예조참의를 거쳐 승정원으로 들어가 동부승지를 지내 고홍문관부제학으로있다가1515년에황 해도 관찰사로 나갔다. 또한 청렴해서 청 백리로도뽑혔다.1517년에호조참의로조 정에돌아왔으나병이생기자외직인영흥 부사로나갔다가1518년 10월 13일 관아에 서 돌아가시니 향년 54세이다. 묘지는 고 양시덕양구주교동두응촌선영의존성재 공 묘역에 있다. 비갈이 있고 명문은 의성 인모재김안국이지었다. 해백공은 숙부인 해주오씨와의 사이에 운(芸)·인(茵)·설(薛)·명(蓂) 4형제를 둠 으로써크게번성한다. 장자운(芸)의자는운지(芸之)호는용 암(龍岩) 또는 유당(柳堂)으로 선략장군 부사과로 중종조 기묘사화로 인해 청주로 낙남하여 더 이상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 다.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장자 혼원(混 元)은 음직으로 남양현감이 되어 현감공 파의 파조가 되고, 차남 건원(乾元)은 문 과 부사로 부사공파 파조, 삼남 제원(悌 元)은 통정대부에 올라 호 청강(晴岡)을 따청강공파,사남정원(禎元)은충훈부도 사를지내도사공파의파조가 되어이들 4 형제후손이해백공파의다수를이룬다. 해백공의 차자 인(茵)은 현령으로 현령 공파의 파조가 되고, 삼남 설(薛)은 진사 군수로 군수공파의 파조, 사남 명(蓂)은 통훈대부 부호군에 증직되어 호군공파의 파조가된다. 한편 도사공파종중(회장 성율)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만리동 2가 KCC파크타운 104동 702호 종중사무실에서 2023년 정기 총회를 갖고 2022년 세입 89,040,921원 세 출 84,869,920원의 결산 안과, 선산 매각과 관련 외부인(상급종친회)과 공모해 해종 행위를자행해종재를낭비케하고종무를 방해한 혐의로 2명을 해종 행위자로 규정 하는안을원안가결했다. 성율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참석 및 회 비징수율이저조한것을지적하고종친회 는다양한성격의소유자들이총망라돼있 는 만큼 내 생각만이 제일이라는 아집과 자신만의 뜻을 기필코 관철시키고야 말겠 다는 완고한 고집은 종친 간의 화합을 저 해하고 불화를 조성하는 독소임으로 지양 되어야한다며적극적인동참과의무를다 해권리를찾아야한다고말했다. 밀양박씨해백공파중앙종친회2023정총 성료 책임과의무를다해야븣도사공파종중3월18일정기총회가져 전북장수군계남면침곡리요전마 을주민들은충주박씨화계(휘상석) 선생을추모하고정신을계승하기위 한 ‘요전경독사숙기념비’를 마을 입 구에세웠다. ‘요전경독사숙기념비’는1930년봄 에 화계 박상석 선생의 주창으로 동 민과 인근 유지들이 뜻을 모아 경독 사숙(耕讀私塾)을 세워 가혹했던 일 제강점기 우리글과 문화를 말살하려 는 일본에 맞서 국어, 국사, 한문, 예 절을가르쳤고,광복후에는정부에서 실시한성인교육으로이어져옛터까 지 함께 지도한 결과 상·하 남녀노소 모두 백점을 맞아 전국 수석으로 대 상을 받는 등 문풍을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밤낮 없이 책을 끼고 사시는 부모님을따라자연스레독서를즐기 는 자녀들은 성공으로 이어져 인근 마을의부러움을샀다. 이에교육을통하여민족의식을고 취하면서 낮에 밭 갈고 밤에 글 읽는 지혜와 근면정신을 길이 이어가고자 면지와 군지 그리고 향교지와 사숙 안, 강록(講錄), 구재록(鳩財錄) 등 국사편찬위원회 조사 기록에 근거해 비를세우게된것이다. 이번 세워진 ‘요전경독사숙기념 비’는 1998년 인근에 세워진 ‘화계선 생강학비’ 부근에 세워졌는데 풍수 지리적으로 보면 좌청룡에 강학비가 우백호에 경독사숙기념비가 세워져 주민들은 이 또한 선생과 주민들의 홍복이아닌가말하고있다. 화계 선생은 1894년(고종 갑오)12 월 26일 요전리에서 용와 박치종 선 생의 장자로 태어났으며, 충주박씨 고려부정공휘영의23세손이다. 1900년 7세 되던해 탄재(坦齋) 박 선생에게 천자문을 배웠고, 다음해 정월에 도보로 전주 탄재 선생을 찾 아뵙고1박후귀가하였고,송산의묵 재(默齋)김선생에게수학하면서조 석으로 혼정신성(昏定晨省,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게을리 하 지않았다. 1908년 15세에 천천 쌍암리의 백암 노 선생에게 중용을 배우고 25세 에 계남 향약을 조직하였다. 36세에 전 주 흠재(欽齋) 최 선생에게 나아가 배웠으며,37세에요전경독사숙을설 립했다. 1936년 장수향교 전교에 추대되어 대성전, 명륜당을 중수하였으며, 동 서재와사마재문루를중건하고담장 을 증축하고 충복비각, 논개비각 중 건 등 많은 업적을 남겨 향교가 국보 로지정되는발판을만들었다. 1962년 68세에 화산사를 창건하였 고, 군내의 여러 서원을 복설하고 청 양 모덕사(慕德祠) 장의에 추대되었 다. 1974년 81세까지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예속(禮俗)을 돈독하게지키며성현의도(道)를이 어 후학을 양성하는데 평생 정력을 쏟고 그해 10월 22일 돌아가시니 문 인들이 화계집 7권을 펴내고 존양계 를 조직하여 매년 3월 20일 선생의 학 덕을기리고있다. 한편 이번에 세워진 ‘요전경독사 숙기념비’는 청소년들을 위해 한글 과 난해한 글은 한문으로 병행하여 기록하였고,큐알코드를만들어쉽게 볼수있도록하였다. 전북장수군계남면요전마을 ‘요전경독사숙기념비’세워 전북장수군계남면요전마을입구에세워진두비석은강학비는좌청룡요전경독사숙기 념비는우백호의길지에세워져지나가는길손을잡는다. 화계박상석선생기려븣1998년강학비에이어 화계박상석선생 큐알코드를촬영하면쉽게볼수있다. 금은박성양(朴成陽)선생의학문과덕행을 추모하는춘향제례가지역유림주관으로지난 20일 오전 11시30분부터 40여분에 걸쳐 엄숙 봉행되었다. 이날 제례는 오전 11시 강당인 명교당에서 개좌를 열어 제관분정을 마치고 사당인 경덕 사에서인동장씨예천문중장건덕(張建德)전 회장의 집례로 질서정연하게 봉행되었으며, 독축은 회연서원 유사를 맡고 있는 정효식(鄭 孝植, 청주인) 유학자가 맡았다. 제례 후에는 명교당에서음복례와초헌관을비롯한아헌관 종헌관 집례 대축 순의 순배(巡杯)에 이어 강 평이있었다. 초헌관으로헌작한정명(鄭 믄 ,청주인)회연서원원장은훌륭 한선현의제향에참례하게되어영광스럽다고말하고고유의전 통문화를어떻게보전하여후세에물려줄것인지고민하지않을 수없다며함께노력해줄것을당부하였다. 이어아헌관유시호(柳時鎬,풍산인)병산서원원장은제관모 두 수고하셨고 금은선생의 정신과 우리 고유문화 계승발전 하여 나가자.종헌관 정용규(鄭鏞奎,동래인)예천 만담서원장은 금은 선생은선대왕고모부가된다.양가문의교류협력이활발하게이 어지길기대한다며각각제향봉행에대한소감을피력했다. 한편 제향후 가진 유림회의에서는 후임원장 선임을 운영위원 회에위임하고조희태유사는유임키로했다. 명곡서원은 무신 박성양(朴成陽)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 하고,지역민의 교육과 후진양성을 위해 순조 18년(1818)에 창건 되어 철종 2년(1851)에 사액되었고,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 원철폐령으로 훼철되고 그 뒤 1905년 명곡서당으로 후학양성기 관으로 운영되다 1975년 명곡서당을 명곡서원으로 복원되었으 며,의성군문화유산제37호이다. 경덕사에 배향된 금은 박성양 선생의 관향은 함양 호는 금은 (琴隱),시호는정헌공(定憲公)이다. 상서공(휘 선)의 11세이고, 중시조는 금자 광록대부 판삼사사 를 역임한휘 지량(3파)의후손으로 아버지는 중랑장휘 윤후(允 厚)이며포은선생문인이다. 스승 포은 정 선생께서 불행히 참화(慘禍)를 당하심에 공명에 대한무상함과왕위찬탈에분개하여시골고향인경북의성봉양 분토리 봉두산 선영하 엄자현(俺紫峴)에 돌아와 은거하셧다 금 서(琴書))를 벗 삼으시며 가난하나 편안하게 사시며 자호(自號) 를금은(琴隱)이라하시고오로지성리학에만정수(精修)하시니 세칭고려말28은(二十八隱)중의한분이시다. 태조6년 5월에 왜구가 남해안에 침입하여 백성이 어육을 당하 고있으니조야(朝野)에서공론이븮박성양은문무를겸전한용감 한인물로서왜적을격퇴시키는데는가장적절한인물이오니등 용하시옵소서븯하고천거하자태조는왜구정벌원수로삼았다.선 생은일신의영달을위한소명은거절하였으나나라와백성을구 휼하는일이기에흔쾌히수락하여부산포로달려가60일만에왜 적을 소탕하고 대첩을 거둬 태조는 븮석자의 큰 칼로 사직을 안정 시키고한줄기채찍끝으로천하를평정하였네븯라며어사시를하 사하였다. 이후 광주목사, 우군절제사, 우 군동지총제, 이조참판 겸 도총부 부총관을역임하고은퇴후고향으 로 돌아와 제손들을 위시하여 인 재양성에 매진하였으며, 고종 5년 에 이르러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관제주 오위도총부도총관의 증직과 시호를 정헌(定憲)이라고 함께내려졌다. 경북의성명곡서원춘향봉행 고유의전통문화를어떻게보전하여후세에물려줄것인지함께노력하길 명곡서원춘향제례가지역유림주관으로봉행된가운데제향에참례한제관과 후손들이함께하고있다. 제향광경(독축) 제향전개좌에서분정된제관을기록하고있다.